[오마이뉴스] 시체 위를 달렸다… 아, 미안하다
방송날짜: 2009.01.05
시체 위를 달렸다… 아, 미안하다
로드킬 현장 곳곳 발견… 안내표지판·이동통로 확대 필요
윤성효 (cjnews) 기자
▲ 로드킬. 2008년 12월 29일 오후 경남 함안군 여항면 내곡리 앞 도로에 고라니로 보이는 야생동물이 차에 치여 죽어 있다.
ⓒ 윤성효 로드킬
로드킬(Road kill, 길죽음). 동물이 도로에 나왔다가 자동차 등에 치어 사망하는 것을 말한다.
취재하러 이리저리 다니다 보면 도로 위에서 죽은 야생동물의 흔적을 자주 본다. 짐승의 피가 바닥에 낭자하거나 창자며 살점이 떨어져나가 보기에도 흉하다. 심지어 짐승의 형체가 그대로 바닥에 붙어버린 현장도 발견한다.
간혹 승용차를 길 옆에 세워놓고 그렇게 죽은 동물의 ‘장례식’을 치러주기도 한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을 때, 아주 가끔이다. 그러나 대부분 지나친다.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시체 위를 지날 때면 꼭 죄지은 기분이다. 그래도 비켜갈 때면 솔직히, 조금은 다행이다 싶다.
얼마 전 경남지방경찰청 한 경찰관과 로드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는 승용차 트렁크에 간이 장비를 싣고 다닌단다. 접을 수 있는 삽 같은 기구 말이다. 길을 가다가 죽은 동물이 있으면 승용차를 세워놓고 구덩이를 파서 묻어 준단다. 그도 “자주는 못 한다”고 했다.
고라니 죽인 범인, 저 아닙니다
2008년 12월 29일. 저녁노을이 산중턱까지 내려왔을 무렵이다. 경남 함안군 여항면 내곡마을 앞을 지날 때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반듯하게 난 도로 앞에 물체가 보였다. 속도를 줄였다. 고라니가 죽어 있었다.
차를 길 옆에 세워놓고 다가갔다. 고라니가 길바닥에 누운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 같아 보였다. 장갑을 낀 뒤 고라니의 다리를 잡고 길 옆으로 이동시켰다. 그러는 사이 차량 몇 대가 지나갔다. 속으로 ‘지나가는 차에 탄 사람들은 고라니를 죽인 범인이 나라고 여기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빨리 그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보름 전에도 끔찍한 현장을 봤다. 12월 14일 이른 아침이었다. 하루 전날 열린 ‘진주신문 가을문예’ 시상식 뒤풀이를 지리산 중산리에서 하고 다음 날 아침 일찍 돌아올 때였다. 산청 덕산 입구 도로 한가운데 한 생명이 죽어 있었다.
사람의 피와 같은 색깔인 붉은 자국이 바닥에 있었고, 창자가 몸 밖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처참했던 그 현장은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 로드킬. 2008년 12월 29일 오후 경남 함안군 여항면 내곡리 앞 도로에 고라니로 보이는 야생동물이 차에 치여 죽어 있다(사진 속에 보이는 차량은 이 야생동물의 죽음과 관련이 없음).
ⓒ 윤성효 로드킬
길죽음을 줄일 수 없을까.
지방도나 국도에서 제한속도를 지킬 경우 대부분 로드킬은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과속이 로드킬의 한 원인일 수 있다. 운전자의 주의가 우선 필요하다.
과속으로 달리는데 어떤 물체가 갑자기 나타나면 운전자는 당황한다. 그 상황에서 급브레이크를 잡거나 물체를 피하려다 보면 교통사고가 날 때가 있다. 그래서 어떤 이는 교통사고를 피하기 위해서는 들이받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또 야생동물이 자주 나타나거나 로드킬이 발생하는 도로에는 안내표지판을 더 많이 세워야 한다. 경남도청 도로정책과 담당자는 “로드킬에 대한 문제 인식 수준이 높아져야 한다, 최대한 도로에 안내표지판을 많이 세우려고 한다”고 말했다.
야생동물 이동통로도 확대해야 한다. 그런데 예산이 만만찮게 든단다. 이동통로는 쥐나 뱀이 이동하는 작은 통로와 멧돼지 등이 이동하는 큰 통로로 나눌 수 있다.
작은 통로는 대개 10~14m 정도인데, 1m당 20만원 안팎이 들어간다. 큰 통로는 높이 4m, 폭 4m 정도를 말한다. 새로 나는 도로에 통로를 만들면 3000~4000만원 정도지만 기존 도로에 새로 설치하려면 1억원가량 들어간다.
경남도청 관계자는 “요즘 새로 만드는 도로에는 대부분 이동통로를 만드는데, 기존 도로에 설치하려고 하니 예산이 많이 든다”고 설명했다.
속도를 줄이세요, 시체는 치워주세요
경남도는 지방도에서 로드킬 현장을 목격하고 신고할 경우 포상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2007년 7월 전국 최초로 경남도와 경남도의회가 조례를 만들었다.
최초 신고자한테 5000원을 주고, 죽은 짐승을 도로 옆으로 옮겨놓았을 경우 1만원을 준다. 도로에서 현장을 목격하고 해당 읍·면·동사무소나 도로관리사업소에 전화로 연락하면 된다. 이후 담당 공무원이 현장에 나가 죽은 짐승을 처리한다.
그러나, 포상은 경남도에서 관리하는 지방도로에만 해당된다. 국도나 시·군도는 제외다. 경남의 모든 도로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비슷한 조례를 만드는 기초자치단체가 생겨나고 있다. 경남의 경우 최근 사천시와 창녕군 등 4곳에서 관련 조례를 만들었다. 이곳에서는 시·군도까지 포상한다.
2008년 한 해 동안 경남지역 전체 로드킬 신고로 포상금을 받은 사례는 몇 건일까? 경남도청 담당자가 밝힌 신고 건수는 총 10건이란다. 지난해 지역 전체 로드킬이 이 정도만 발생한 건 아닐 것이다. 이러한 제도를 몰라서 신고를 하지 않는 사례가 훨씬 더 많은 것으로 풀이된다.
경남도청 담당자는 “마을 이장회의 등을 통해 여러 차례 제도를 홍보하고 있지만, 아직 주민들이 많이 모르고 있어 신고횟수가 적다”면서 “포상금도 적다는 지적이 있는데 개선책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포상제도가 지방도만 해당되어 효과가 작다는 지적도 있는데, 국도와 시군도까지 확대할 필요가 있다”면서 “안내표지판을 늘리고 조례도 보완하다 보면 점점 인식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 2008년 12월 14일 아침 경남 산청군 시천면 덕산 부근 도로에 야생동물 한 마리가 차량에 치여 피를 흘리며 죽어 있었다.
ⓒ 윤성효 로드킬
통영거제환경연합과 ㈔에코붓다는 거제 금강사에서 야생동물 위령제를 지냈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였다.
김일환 통영거제환경연합 사무국장은 “인간 중심의 활동으로 인해 죄 없이 죽어간 생명들의 넋을 위로하고자 야생동물 위령제를 열고 있다, 동물들의 길 죽음을 없애기 위해서는 도로시설 등 각종 장치와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새해에는 길에서 죽은 동물을 보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고 소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