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에 함께 살기 | 박진순
2009년 정토회 청년불교대학에 다니면서 정훈과 정아를 만났다. 두 사람과 집 이 전철로 두 정거장인 걸 알게 된 후 불대 끝나고 귀가를 함께하며 점점 가까워 졌고, 외대 앞 수정포차에서 함께 하는 막걸리 잔이 늘어날수록 미래를 어떻게 살 지에 대한 이야기가 깊어갔다.
2010년, 지금까지와는 다른 생태적 삶에 대해 그간 나눴던 이야기들을 작게나 마 실천으로 옮기기 위해 나는 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 진행하는 도시농부학교에 등록했고, 집에서 버스로 한 시간쯤 걸리는 사릉에서 주말농장도 함께 시작했다. 어떤 땐 둘, 또는 셋이서, 또 때로는 청년정토회 친구들과 함께 주말엔 사릉으로 향했다. 그러나 의욕적으로 시작한 주말 농장 텃밭 운영 결과는 낙제점이었다. 주 말이라야 겨우 갈 수 있는 텃밭이지만 그나마도 주말 일정이 잡히면 2, 3주씩 못 가게 되는 경우가 허다했고, 그러다 결국은 텃밭 자체를 포기해버리는 일을 두 해 동안 되풀이했다. 차를 타고 가야하는 주말 농장은 우리에게 한계가 분명했다.
2011년, 두 번째 주말 농장에 도전하던 그 시기, 우리는 귀농귀촌에 대한 이야 기를 자주 했다. 우리가 머리로 알고 있는 생태적인 가치를 몸으로 실현하려면 시 골에 가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동네 어르신들, 다정한 이웃들과 더불어 뭐든 나 눠 먹으며 소박하게 사는 삶, 손과 발을 움직여가며 몸을 쓰며 사는 삶, 먹을거리 를 스스로 생산하며 사는 삶,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삶……. 나한테는 대략 그런 그림이 머릿속에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이상적인 삶은 혼자 꿈꾸면 결국 말로만 끝나버리기 쉽고, 함께 하면 그래도 실현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고 이야 기를 나눴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던 친구들-성희, 재원, 준효와 귀농귀촌을 준비하는 모임을 꾸렸다.
‘한 달에 한 번 모여서 이야기 나누자’고 시작된 모임이 일주일에 한 번으로, 다시 일주일간의 합숙으로 진전되었 다. 각자 낮에는 회사에 다녀 오고, 저녁시간부터 새벽까지 귀촌과 맞물린 몇 가지 주제 에 대해 할 수 있는 한 치열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각자의
귀촌에 대한 그림을 맞춰보는 작업부터 공동체 결합 수위, 경제구조, 소유에 대한 것까지, 일주일 시간이 부족했다. 서로의 생각을 맞춰 본 작업을 통해 결국 합숙 에서 얻은 결론은 이랬다. ‘모두가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이렇게 함께 이야기 나누며 맞춰가는 것이 참 재미있는 작업이구나.’ ‘귀촌 시기는 각자 다를 수 있지만, 일단 당장은 어렵다. 2년 정도 함께 살면서 준비해 보자.’
함께 사는 논의가 시작된 지 두 달 만에 인천 검암으로 이사했다. 사람들에게 우리의 삶의 형태에 대해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우리가 함께 사는 형태 를 ‘공동주거’라고 나중에 이름을 붙여 말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함께 산 지 어느 덧 2년 가까이. 그 동안 우리들의 생각의 폭과 깊이도, 공동주거의 시스템도, 처 음 여섯 명으로 시작되었던 규모도, 관심사와 활동 영역도, 또 외부에 알려지는 속도도, 2년 전에 내가 생각했던 정도를 훨씬 넘어서 달라져 있다는 것을 새삼 실 감한다. 우리 동네 사람들. 줄여서 ‘우동사’라는 이름은 세 번째 쯤 모였을 때 탄생 한 이름인데 ‘우리’에 대한 개념도 ‘동네’에 대한 개념도 이름에 걸 맞는 모양으로 점점 더 크고 발전된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단디, 세리, 은주, 재 현, 동진, 수경이 들어와서 12명이 살고 있는 지금의 형태는 아마 앞으로도 계속 진화를 거듭하리라 생각한다. 사람이 늘어난 만큼 생각도 다양해져서 지금은 꼭 귀촌에 뜻이 있는 친구들만 사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그토록 원했던 ‘귀 촌’이라는 것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가에 대해 새로운 정의를 내려야하지 않을까 이야기하고 있다.
앞으로 걸어 갈 삶의 길에서 과연 어떤 일들을 이들과 ‘함께’ 하게 될지 모르겠 다. 하지만 이렇게 같이 두런거리며 서로 성장할 수 있는 ‘우동사’ 식구들이 있어, 그 길이 뭐든 맘 놓이고 든든하고 설렌다.
# 에코붓다 소식지 2013년 3월~6월 호에 실린 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