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술쟁이 지렁이, 아이들과 함께 | 김경희
김경희 | 동래지부 자원활동가
오랜만에 지렁이분양 요청이 들어왔다. 그것도 북구 명진중학교, 금곡중학교, 금정구 남산초등학교 3곳에서 연달아서 지렁이를 키우고 싶다고 한다. 춥지도 덥지도 않아 지렁이가 한창 번식할 때이니 계절이 딱 좋고, 아이들이 지렁이를 키우고 싶다고 하니 그저 기특한 마음이다. 그렇게 기분 좋은 만남이 시작되었다.
꼼꼼하게 사전 의논하시던 명진중학교 담당선생님 안내에 따라 과학실에 들어가니 중2, 중3학생들로 구성된 과학 동아리 <그린리더스> 학생 20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렁이 키워본 친구들 있냐?’고 물으니 없다고 한다.
‘그럼 지렁이 보면 어떻냐?’고 물으니, ‘너무 징그럽고 무섭다’는 반응이 많다.
우선 아이들이 지렁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알았다. 비오면 길가에 누워있는 지렁이를 누가 좋아할까. 그런데도 지렁이를 키우려고 하다니 그 용기가 고맙다.
오늘 점심시간에도 먹기 싫은 음식들을 모두 잔반통에 넣어버리고 왔다. 그런데 ‘음식물쓰레기 줄이기’에 대한 영상을 보고나니, 나 하나쯤이야 하면서 버렸던 음식물쓰레기들이 환경에 얼마나 나쁜 영향을 미치는지 알았다. 앞으로는 음식을 먹을 만큼만 담고, 먹기 싫은 음식이 있어도 조금 참고 먹어야겠다.
그리고 작고 징그럽고 꼬물꼬물 기어다니는 지렁이가 음식물쓰레기를 없애준다는 것이 정말 신기했다. 지렁이에게 정말 고맙고 나도 꼭 집에서 키워보고 싶다.
(중2 하지원)
대부분 학생들은 음식물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지렁이를 키우는 것을 모른다. 밥 한 그릇이 내 앞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정성과 노고가 필요하며, 음식을 먹고 버리면 쓰레기가 되고, 그 쓰레기들이 어디로 가는 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강서구에 있는 생곡쓰레기매립장에 쌓이는 태산같은 쓰레기산과 음식물쓰레기 처리과정을 보여주면, 그제서야 쓰레기가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것을 공감한다.
금곡중학교 학생들과는 생곡쓰레기매립장 방문도 후속 강연으로 잡았다. 복지관버스 1대를 빌려서 매립현장을 직접 둘러볼 예정이다. 담당 선생님의 열정이 느껴졌다.
비닐에서 석유를 뽑아내고, 음식물쓰레기에서 전기를 만들어내며, 재활용품은 또 다른 형태가 되어 잘 처리되고 있으니 분리배출만 잘하면 안심하고 버려도 되는 것처럼 처리과정의 발전과 기술력에 대한 홍보에 집중되어있는 매립장 홍보관보다 학생들과 그 물렁 물렁거리는 쓰레기 산을 직접 밟아볼 계획이다.
남산초등학교는 5,6학년 동아리학생들이 함께했는데 담당선생님이 에코붓다활동을 알고 계시고 한번 씩 학생들에게 음식물쓰레기에 관한 영상물도 보여주신 덕분에 초등학생들이지만 잘 공감해주었다. 바쁜 시간에도 아이들과 지렁이 집을 만들고 흙을 준비하신 정성에 기분이 좋았다.
드디어 지렁이분양시간. 스티로폼에 창문과 환기구멍을 내고 예쁘게 장식한 명진중학교 지렁이 집, 어항을 활용하여 만든 남산초등학교 지렁이 집, 목공 실력이 뛰어난 학생이 2시간 걸려 만든 가구처럼 멋진 금곡중학교 나무상자 지렁이 집을 보며 미리 준비한 정성에 감동했다.
지렁이를 쏟아 붓는 순간 아이들은 빙 둘러서서 환호한다. 그 순간만큼은 지렁이를 무척 좋아하게 되고 너도나도 지렁이엄마가 되고 싶다고 한다. 지렁이도 이사하느라 멀미가 나니까 일주일 정도는 아무것도 주지 말고 안정을 시켜주고, 차츰 차츰 과일껍질부터 조금씩 주라고 하니 지렁이가 새삼 조심조심 다룰 생명체라는 걸 알게 되고, 걱정 해줘야할 존재라는 걸 배우게 된다.
쓰레기매립장과 달리 지렁이는 에너지를 하나도 쓰지 않고 유일하게 음식물쓰레기를 없애주는 고마운 존재라는 걸 다시 한번 강조하면서 한꺼번에 많이 남겨서 지렁이 힘들게 하면 안된다고 하니 다들 앞으로 잘 할 거라고 다짐한다. 지렁이에 대한 무한애정을 확인하며 돌아오는 길은 너무 뿌듯하고 고맙다.
지렁이가 흙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도 신기했다. 지렁이에게 먹이를 주고 관리해주는 것이 귀찮기도 하지만 지렁이를 직접 보니까 신기하고 잘 키워봐야겠다. (중2 김영태)
한 달쯤 지나면서 지렁이A/S 전화가 온다. 잘 안 먹는다. 잘 안 보인다. 그 때마다 상황에 맞게 알려주지만 항상 아쉬움이 남는다. 지렁이분양 강연은 한 번으로 끝내면 안 된다. 생명과 관련된 일이기 때문에 아이들의 약속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 키우기 힘든 부분은 없는지, 학교와 같이 해나갈 부분이 많아서 중간점검도 해야 하는데 잘 안 된다. 여전히 숙제로 남는다.
과학실 칠판에 누군가 써놓은 ‘지렁이가 지렁지렁 주렁주렁~ 이라는 말이 참 좋다. 지렁이가 주렁주렁 번식해서 잘 자라도록 우린 지렁이를 돌보고 지렁이는 우리 삶을 돌본다. 작은 생명체 앞에서 우린 겸손과 감사함을 배우게 된다. 우리 주변 누구나 지렁이를 주렁주렁 키우게 될 때까지 지렁이 분양은 쭈욱 계속될 것이다.
# 에코붓다 소식지 2013년 3월~6월 호에 실린 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