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생명의 흙(1)

 

특집|생명의 흙


과거에는 음식물 쓰레기가 나오면 텃밭에 묻고 그 위에 흙과 쌀겨, 지푸라기를 덮어두었습니다. 잘 숙성되면 거름으로 사용했고, 자연스럽게 흙으로 돌아갔지요. 정토회는 이를 되살리고 음식물 쓰레기로 인한 환경 오염을 줄이고자 ‘흙퇴비 실험’을 했습니다.

정토회의 음식물 흙 퇴비화 사업은 2019년 8월 서울제주지부 활동가들이 에코붓다의 지원을 받아 시도했습니다. 같은 해 10월 행정처 활동가 15인의 실험으로도 이어졌으며, 여러 고증을 거쳐 정토 회원들을 대상으로 실험단을 모집했습니다. 2019년 12월, 1기를 시작으로 2021년 12월 3기까지 현재 정토회 흙퇴비화 실험단에는 1800명 이상의 정토 회원들이 참여해 흙 사랑, 지구 사랑 마음을 나누고 있습니다. 생명의 귀함과 만물의 이치를 일러주신 부처님의 가르침을 흙 한 줌에서 깨우칩니다.

 


 


흙 한 줌의 공덕

손승희 |정토회 지원국 실천활동 환경담당


부처님께서 죽림정사에 계셨을 때의 일입니다. 이른 아침 부처님께서는 아난존자와 함께 탁발하기 위해 왕사성으로 향하셨습니다. 한 마을에 이르자 어린아이들이 흙을 모아 집과 창고를 짓고 곡식을 만들어 놀이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 아이가 멀리서 오시는 부처님을 보고는 환희심으로 흙으로 만든 창고에서 곡식이라 이름 지은 한 줌의 흙을 보시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아이의 키에 맞춰 발우를 낮추시고는 머리를 숙여 그것을 받아 아난존자에게 말했습니다.
“이것으로 내 방바닥을 바르라.”
아난존자는 그 흙 한 줌으로 부처님 처소의 방바닥을 발랐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그 아이는 흙 한 줌을 보시한 공덕으로 말미암아 내가 열반한 백 년 뒤에 전륜성왕이 되어 8만 4000의 탑을 세울 것이다.”
그 아이는 훗날 아소카왕이 되었습니다. 인도 대륙을 통일한 아소카왕은 부처님을 기리는 8만4000기의 탑을 세웠습니다. 세상에서 가치 없다고 여기는 흙 한 줌이건만 그것이 낳은 과보는 매우 컸습니다.

 

생명을 담는 그릇, 흙
흙은 생명이 사는 터전입니다. 지구가 생명이 사는 행성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흙 때문입니다. 영어로 지구를 뜻하는 단어 ‘얼쑤 earth’에는 ‘흙’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태초의 사람 ‘아담’도 히브리어로 ‘아디마adama’라는 ‘땅과 흙’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지구의 표면을 뒤덮고 있다고 여겨지는 흙은 사실은 깊어 봐야 2미터가 조금 넘는 정도입니다. 지구의 반지름이 약 640만 미터니 생각만큼 넉넉하지는 않지요. 그저 식물이 뿌리를 내려 살 수 있는 깊이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 흙은 품고 있는 여러 가지 영양 성분을 내주어 식물들이 뿌리를 내리고 하고, 뭇 생명에게 먹을거리를 내어줍니다. 모든 생명의 근원이라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영양 성분, 즉 유기물이 섞여 있지 않은 흙은 생명이 살지 못하는 모래 덩어리와 같습니다.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간다.’라고 말하는 우리지만 정작 흙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우리는 발밑에 있는 땅보다 천체의 움직임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다”라는 말로 흙에 대한 인간의 무지를 설명했지요.

(▲사진설명:부처님께 흙을 보시하는 아이들-청남 권영한 作)

 

흙 한 줌의 우주

微塵中含十方 一切塵中亦如是 (일미진중함시방 일체진중역여시)
한 작은 티끌 속에 시방세계 머금었고 온갖 티끌 가운데도 또한 이와 다름없네.
– <법성게> 중에서

부처님께서는 작은 티끌에도 우주가 있고, 생명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의 말씀처럼 흙 한 줌을 살펴보면 그곳에는 소우주가 펼쳐져 있습니다. 흙은 옷감을 염색할 때에도 쓰이고 그릇을 빚고 집을 지을 때도, 약으로도 쓰입니다. 또, 흙은 씨앗에서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는 특별한 존재가 되어 줍니다. 무엇보다 흙을 들여다보면 생명이 생명을 품고 있는 온전한 작은 우주가 보입니다. 눈에 보이는 생명부터 보이지 않는 생명, 미생물과 곤충 그리고 곰팡이에 이르기까지 여러 생명이 조화를 이루는 터전입니다. 흙이 먼지처럼 날아가지 않는 것은 미생물이 그 안을 지키기 때문입니다. 그 미생물과 흙이 뜨거워지는 지구의 기온상승을 막고 함께 사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흙은 살아있다’라고 말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정토회에서 하는 흙퇴비화 실험은 바로 이 흙이 가지고 있는 생명력에 기대어 지구 환경을 살리자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음식물이 넘쳐나는 시대에 이를 함부로 버리면 땅과 물을 오염시키는 쓰레기에 머물지만, 흙의 도움을 받아 퇴비를 만들면 생명을 살리는 귀한 양분이 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유기물은 미생물의 먹이가 되고, 미생물은 다시 이들을 분해해 작물이 흡수할 수 있는 무기질을 만듭니다. 흙퇴비화 운동은 흙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입니다.

 
흙 퇴비화, 지구를 위한 작은 공양
최근 과학자들은 흙 속에 있는 다양한 유기물과 식물의 뿌리가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지구의 기후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선진국들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흙 살리기’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화학 비료 대신 퇴비를 많이 쓰는 농부들에게 지원금을 주는 나라도 있습니다. 탄소배출을 줄여 자국의 ‘탄소배출권 거래 수익’에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흙을 조금 더 이해하고 살핀다면 지금 일어나는 기후 위기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토회의 ‘흙퇴비화 실험’은 내 집에서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이지만, 지구적 차원에서 보면 건강한 지구를 지켜내는 열쇠가 될 것입니다.
아소카 왕이 부처님께 올렸던 흙 한 줌의 작은 공양이 그를 전륜성왕으로 만들었듯 우리가 오늘 일구는 한 줌의 흙퇴비가 지구를 환경위기에 구해낼 큰 공덕이 되리라 믿습니다.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한 줌의 흙이 담고 있는 생명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에코붓다 소식지 2022년 01·02월호에 실린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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