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량소비사회가 가져온 인류문명의 위기

2007.07.21 18:30:52


            대량소비사회가 가져온 인류문명의 위기



                                                                 법륜스님( 정토회 지도법사, 한국불교환경교육원 이사장 )


  전지구적인 차원에서 볼 때 가장 큰 문제는 환경문제다. 환경문제를 이야기하려면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다. 흔히 사람들은 ‘잘 산다.’ 라는 표현을 쓰는데, 그 말을 할 때의 기준은 과연 무엇일까? ‘이 나라는 저 나라보다 잘 산다.’,’이 사람은 저 사람보다 잘 산다.’,’요즘은 옛날보다 잘 산다.’라고 말할 때 잘사는 기준이 과연 무엇일까? 여기에는 여러가지 척도가 있을 수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소비수준을 들 수 있다.

  ‘잘 산다.’라는 소리를 듣고 살려면 원하는 만큼 많은 소비를 해야 하는데, 그러자면 당연히 생산이 뒤따라야 한다. 사람들은 그동안 지속적으로 노력해서 과학과 기술을 통해 대량생산을 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들어 냈다. 그것이 바로 산업사회이다. 결국 산업사회란 인간의 소비욕구를 충족하기 위해서 생겨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이전에는 한정된 생산을 했기 때문에 한정된 소비밖에 하지 못했다. 반면에 현대문명은 대량생산, 대량소비을 하려면 그만큼의 원료가 있어야 한다. 과거의 의류는 원료가 무한한 줄 알았다. 다만 사람의 힘이 부족해서 충분히 확보하지 못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노동력만 있으면 산에 가서 나무를 베어 오면 되고, 노동력만 있으면 땅에서 석탄을 캐내면 될 뿐이었다. 그러므로 상품의 가치는 인간의 노동력을 얼마나 투여했느냐에 따라 결정되었다. 바로 이것이 노동가치설이다. 그런데 산업사회에서의 대량생산은 곧 자원고갈이라는 문제에 부딪혔다. 

  먼저 지하자원의 고갈이 위기로 다가왔다. ‘석탄은 앞으로 30년만 캐내면 없어진다.’, ‘석유는 앞으로 50년 가면 없어진다.’ 라는 예측이 난무했다. 이런 지하자원뿐만 아니라 식량의 고갈문제도 위협적이었다. 식량이 부족하면 필연적으로 전쟁이 발생하게 된다는 이론이 대두했다. 그리고 에너지도 부족했다. 그간 우리의 무한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지구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 유한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확실하게 밝혀졌다. 우리는 이제 일반 자원뿐만 아니라 물조차도 부족한 시대에 살고 있다. 지금 시점에서 볼 때 자원고갈문제에 있어 가장 큰 변수는 바로 물이다. 식량은 증산을 위한 연구를 꾸준히 하고 있기 때문에 과거에 비해서 그렇게 크게 위협적인 요인은 아니다. 비료와 농약을 개발하고, 종자를 개량하고, 유전자 조작을 통해서 슈퍼 감자나 다수확 품종을 만들고 있다. 에너지는 대체에너지를 개발하고 있다. 나무에서 석탄으로, 석탄에서 석유와 천연가스로, 원자력으로, 태양력으로, 풍력으로 계속 개발 중이다. 부족한 기타 자원문제도 신소재 개발을 통해 해결해 나가고 있다. 화학섬유, 플라스틱, 나일론 등 인위적으로 분자를 합성시켜서 자연상태에 없는 새로운 물질을 계속 만들었다. 이렇게 인간은 문명의 한계를 극복해 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1960년대 무렵부터 전혀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생기면서, 문명의 한계를 극복하는 작업이 어려움이 생겼다. 대량생산, 대량소비로 인해 대량폐기물의 부작용이 나타났던 것이다. 옛날에는 폐기물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버리면 끝이었다. 그런데 폐기물로 인한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부작용이 바로 ‘공해’였다. 이문제를 몇천 년 인류역사 속에서 생각도 못 해 본 문제였다. 이 문제는 불경에도, 성경에도 안 나오고 마르크스의 얘기에도 안 나온다. 그때 사람들은 경험해 본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공해로 인해 가장 먼저 문제가 되었던 것은 이따이이따이 병 같은 질병이었다. 그 다음이 공기, 물, 식품 등의 오염문제였다. 그 다음에는 최근에 훨씬 광범위하게 나타난 생태계파괴라는 문제가 있다. 생태계가 파괴되면 종이 소멸하고, 지구의 생명시스템에 치명적인 결함이 발생한다. 그 다음에는 지구환경파괴라고 할 수 있는 기상이변의 문제가 있다.

  이런 문제들에 직면하면서 우리는 ‘과연 어떤 것이 잘 사는 것인가?’ 라는 ‘삶의 질’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것은 이제 인간의 생존에 관한 문제가 되어 버렸다. 우리는 그동안 ‘잘 산다’라고 평가받는 삶을 살기 위하여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사회로 치달아왔다. 그 결과 이제 공기는 더 이상 숨 쉴수 없게 되었고, 물은 더 이상 마실수 없게 되었으며, 식품은 온갖 화학물질에 의해 오염되었다. 육신이 송두리째 병들고 난 뒤에 예븐 루즈를 바르면 무엇하며 최고급 자동차를 타면 뭐 하겠는가? 이것은 심한 말로 하면 쥐가 쥐약을 먹는 것과 똑같은 상황이다. 살려고 먹었는데 결국 죽게 된 것이다. 인류의 문명은 결국 자원고갈이나 폐기물의 부작용에 의해서, 또는 이 두가지 모두로 인해서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삶은 반복적인 폐쇄회로 속에 있다. 결코 무한한 직선이 아니다. 우릭가 버린 것들이 어디론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입으로 먹고 똥을 누면 그것이 돌고 돌아 다시 입으로 들어온다. 언젠가 들은 강연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자동차 배기가스 문제 해결은 아주 간단해서 자동차 배기관을 휘어서 그 끝이 자동차 안으로 향하도록 해 놓으면 된다는 것이다.

  그 얘기를 들으니 세수하고 샤워하고 똥눌 때 나간 것도 다 수도꼭지로 연결해 놓으면 문제가 확실히 해결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 웃기지도 않은 얘기가 사실은 지구 전체로 보면 현실이다. 나갔다가 돌아오는데 걸리는 시간이 좀 걸려서 알아채지 못할 뿐이지, 사실은 고스란히 내게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런데 또 하나의 문제는 이런 환경문제의 발생에 책임이 있는 사람은 지구 60억 인구 중에 20%인 12억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인구의 20%가 지구 자원의 84%를 쓰고 있다. 그리고 인구의 20%인 최하층 사람들이 지구 자원의 1%를 쓰고 있다. 고작 12억 인구의 소비량만으로도 이런 문제가 일어나는데, 13억 중국과 10억 인도사람들이 여기에 가세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결국 같이 죽든지 10억 명만 그렇게 살고 나머지는 소비를 못하도록 하든지 해야한다. 그런데 요즘 세상이 어디 그렇게 되는가?

  지금까지 논의한 문제를 다시 한 번 정리해 보자. 현대문명은 지금 명백한 위기를 맞고 있는데, 첫번째가 자원고갈이다. 옛날에는 자기 경험 속에서 지구의 일부분만 봤기 때문에 자원은 무한하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일종의 무지였다. 부분을 보고 마치 전체인 것처럼 생각해서 생긴 문제였던 것이다. 

  둘째가 환경오염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일직선의 세계가 아니라 마치 원과 같이 순환하고 있으며 서로 다 그물처럼 연결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버린 것들이 우리에게 고스란히 되돌아오는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이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땅이 평평하다고 생각했던 탓인지 여기에서 버리면 저쪽 끝에 가서 영영 사라져 버린다는 식으로 생각했다. 예전에는 아파트에 쓰레기 투입구가 있어서 거기에 쓰레기를 넣고 문을 닫으면 우주로 가 버리는 줄 알았다. 그런데 쓰레기는 바로 아파트 밑에 떨어져 고스란히 쌓여 있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인간의 욕망, 한정된 자원, 쓰고 버린 쓰레기가 결국 될돌아 오는 폐쇄회로, 인간 능력의 비약적 발전 등 여러조건들이 상호 모순적으로 결합하면서 발생한 것이다.

소식지 2004. 7.8월 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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