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적인 대화를 실험하는 공동체, 가나스(GANAS)
2007.07.24 11:26:13
유정길
내가 본 가나스
짧은 시간 머물렀지만 많은 것을 배웠던 가톨릭 워커 하우스를 떠나 ‘가나스’로 향했다. 가나스는 맨해튼 시내에서 배로 30분이면 갈 수 있는 스태튼 섬에 있는 공동체이다. ‘Every Thing Goes Furniture’와 갤러리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건물 옥상 벽에는 유치원을 연상시키는 페인트로 쓴 간판이 있었다.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그 앞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한 아저씨가 자신이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고 말하며 벨을 누르라고 알려주고 안내해 주었다.
내가 ‘줄리’를 찾으니까 한 젊은이가 나와서 코슨 애비뉴 135번지로 안내해 주었다(줄리는 ‘트윈오크스’ 회원이 소개해 준 가나스의 핵심 회원이다). 전형적인 미국의 옛 주택이었다. 작은 집들이 빽빽이 늘어서 있고, 약간 가파른 언덕을 돌아가자 돌담에 135번지가 적혀 있었다. 약 6미터 정도 높이를 가파른 계단으로 올라가서 늘어서 있는 집 가운데 하나로 들어갔다. 올라가니 1층(지하)은 식당인 듯한데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회의를 막 끝낸 모양이었다.
거기서 또다시 줄리를 찾으니까 한 여자가 앞으로 나와 반갑게 인사하고 나를 방으로 안내해 주었다. 이곳은 집들도 조그맣지만 집 안의 통로와 주방과 화장실도 조그맣다. 손님들이 묵는 방은 입구에서 멀지 않고 바로 옆에 주방도 있다. 그런데 침대는 약 2.5미터 위에 올려져 있었다. 침대에서 자려면 위로 올라가고 아니면 접는 소파 겸 침대를 잠자리로 쓰라고 하였다. 그 옆에 침대 겸용 소파가 두 개 더 있었다. 짐을 풀고는 열쇠를 받기 위해서 접수를 했다. 예약금으로 10달러를 주고 열쇠를 받았다. 여기서는 일을 하거나, 아니면 하루에 35달러를 내야 한다. 일을 해야 사람들과 얘기도 할 수 있고 여기저기 자세히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서 작업을 신청했다. 그러고 나서 주방 근처에 있는 사람들과 소개를 하고 얘기를 나누었다.
그러고 나서 바로 일을 시작했다. 가구를 나르는 것이었는데 머리가 길고 아주 귀여운 멕시코 친구가 나에게 가구점 여기저기를 안내해 주었다. 나와 함께 일한 친구는 브라질 출신이었는데, 일을 하면서 자연스레 친해져 자신의 컴퓨터로 메일을 체크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곳 사람들은 아주 친절했다. 첫날은 어디를 가든 조금 낯설고 춥고 불안하다. 그러나 하루 이틀이 지나면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이 든다.
가나스의 인상
‘가나스’는 스페인어이고 이것을 영어로 하면 ‘Strong Motivation/ Strong Desire’라고 한다. 처음 이곳의 가게 이름이 너무 낯설었다. Every Thing Goes Furniture-모든 것은 다 가구가 된다? 그리고 모든 것은 전부 옷이 된다(Clothing), 모든 것은 독창적인 원형이 된다(Original). 이곳은 오래된 가구를 수리해서 파는 일종의 재활용 가게이다. 책이나 옷, 그림들도 모두 기부를 받거나 오래된 것을 수리해서 전시하고 판다. 지하는 수리하는 곳, 1층은 판매하는 곳이나 창고, 2층은 전시장이다. 가구들에는 전부 가격이 적힌 종이 상표가 붙어 있다.
이곳에서는 열쇠를 받기 위한 신용카드의 일종인 디파짓이 10달러이고, 전용 인터넷을 사용하려면 한 달에 5달러를 내야 한다. 방문객으로 일을 안 할 경우 하루에 35달러를 내거나, 아니면 일을 해야 한다. 모든 것이 철저하게 돈으로 계산된다. 실제로 직장인들처럼 하루 아홉 시간씩 쉬지 않고 일을 한다. 일이 없어 노는 모습은 볼 수가 없었다. 일하는 사람들의 작업 시간표가 컴퓨터에 아주 세세히 기록되어 있어 오늘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오후 3시경부터 내린 눈이 엄청나게 쏟아져서 저녁 무렵에는 한 100밀리미터가 쌓였다. 그래서 바깥에서 가구 옮기는 일을 못하니까 전시관 청소와 목제가구에 기름칠하기 등의 일을 했다.
이곳은 아주 깨끗했다. 내 방 옆 작은 주방도 깔끔하게 잘 정리되어 있고 좁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테이블과 복도 등 곳곳에 손길이 많이 간 흔적이 남아 있다. 그리고 저녁식사를 하는 135번지 1층 공간도 꽃꽂이와 나무 장식들이 아주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이곳 사람들은 전형적인 도시 사람 같았다. 수염을 기른 사람들이 별로 없었고 많은 사람들이 말끔하게 면도를 한 모습이었다. 정말 뉴요커나 미시족, 도시 사람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4, 50대가 주축을 이루고 있는 것 같았다. 쿠바, 브라질, 멕시코 사람에서부터 난쟁이 두 사람, 흑인 등 100여 명의 아주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었다. 이들은 개인주택 다섯 채를 구입해 생활하고 있는데 저녁때는 함께 모여서 식사를 하는 모양이었다. 그 밖에 상업용 건물 네 채(미술관, 가구 전시관, 옷, 오리지널)가 더 있다.
이들은 철저하고 꼼꼼하여 이렇게 많은 사람이 사는데도 점심식사는 각자 알아서 먹도록 식당에 준비되어 있다. 컵과 접시 등이 들어 있는 찬장, 스푼과 포크가 들어 있는 서랍, 골고루 먹을 수 있도록 음식이 준비되어 있는 냉장고, 그리고 식사를 하고 나서 그릇을 닦아 두는 곳이 아주 잘 정돈되어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하나같이 행주로 테이블을 닦는 모습 또한 인상적이었다. 화장실도 예약해서 쓰라고 적혀 있었다. 참으로 시간을 엄격히 정해서 지내는 깐깐한 공동체인 것 같다.
가나스의 아침 모임
아침에 일찍 일어나 미리 예약해둔 시간에 목욕을 하고 방 정리를 한 뒤 밖으로 나왔다. 어제 내린 눈이 두텁게 쌓여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변해 있었다. 135번지 건물의 모임방으로 가보니 사람들이 밥을 먹으면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도 간단하게 식사를 했다.
아침 모임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곳에서는 아침 7시 30분에서 10시까지 공식적인 사업에 대해 회의를 한다고 한다. 불참자가 많았고, 멕시코 계통과 흑인들은 별로 없었고 대부분 백인들이었다. 아침식사를 안 하거나 모임에 참석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논의가 있을 때 의견이 있거나 이해 당사자인 경우에는 참석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참석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날은 지붕을 씌우는 문제와 에너지 문제에 대해 토론하였다. 그리고 토론 후 한 할아버지의 개인적인 이야기도 있었다.
가나스에 관한 여러 가지 것들
가나스의 정신과 역사
맨해튼에서 가까운 스태튼 섬에 위치한 가나스는 개방적인 대화를 실험하는 공동체이다. 가나스의 중심 가치는 서로간의 친밀한 의사소통이다. 모든 형태의 갈등을 해소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대화를 통하여 서로를 이해하고자 한다. 또한 ‘배움에 대한 피드백’을 적용하는 것을 추구한다. 일상적인 문제 해결에서 이성과 정서를 결합하고자 한다. 가나스가 지향하는 것은 경쟁적인 권력 게임을 버리고, 협동하고 서로 보살피는 것이다. 1978년에 ‘The Foundation for Feedback Learning’을 시작했다. 1979년 조지라는 스페인 사회운동가를 비롯한 여섯 명으로 시작해서 지금은 약 100여 명의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큰 가족을 이루어 살고 있다.
가나스는 아홉 개의 큰 건물(5개의 주택건물과 4개의 상업건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곳 사람들은 주로 상업건물에서 일을 한다.
가나스라는 이름은 처음에는 농담처럼 시작되었는데, 스페인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한 교사가 한 “큰 욕망을 가져라”라고 말한 것에서 따온 것이다.
공동체의 구성과 성원들 간의 관계
이곳 사람들은 주로 25세에서 55세까지의 연령층이며, 아이들은 소수이다. 대부분은 두 사람이 한 쌍을 이루고 있는데, 부부이거나 계약 결혼자이거나, 혹은 동거인이다. 다양한 종족, 국적, 종교, 직업, 학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살지만, 조화를 이루며 살고 있다. 가나스는 다양한 삶의 형태 가운데서 자신이 자유롭게 선택하여 살게 하므로 기존의 사회정치와는 다른 구조를 갖는다.
공동체의 사람들은 세 부류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개인 소유를 하지 않고 서로 공유하는 삶을 살면서 공동체의 최고 의사결정 기관을 이루는 이사회이다. 두 번째는 이곳에서 살고 있지만 월급은 개인이 소유하는 사람들이다. 공동체의 여러 일들에 대해서 자치적인 의사결정권을 갖고 있으며, 장기간 거주하는 그룹이다. 세 번째는 이곳에서 잠만 자고 맨해튼 등에 직장이 있으며 매달 600달러의 생활비를 내고 사는 사람들이다. 공동체의 목표나 활동과는 무관하게 살아가지만, 공동체에서 약 3년 정도 살게 되는 사람들이다.
이웃과의 관계는 어느 공동체든 중요하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이웃과 관계가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어떤 이는 현재 이곳의 회원이 95명 정도인 것도 많다며 40~50명으로 줄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뉴욕 전체를 이곳처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누구나 회의에 참석할 수 있으며, 한 달 이상 살면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
공동체의 사업과 노동
공동체의 사업은 재활용이다. 이 사업은 ‘Everything Goes’라는 네 개의 소매점에서 한다. 이 소매점에서는 책과 보석 혹은 미술 작품, 가구와 의류 등을 판매한다. 이 상품들은 주로 공동체 인근 지역의 사람들이 사용하던 것이거나 직접 만든 것들이다.
공동체 사람들의 노동 시간은 일주일에 40시간 내외이다. 노동을 통하여 공동체 생활에 필요한 지출을 충당하며, 한 달에 약 300달러 정도의 수입을 얻는다. 그리고 이외에도 공동체로부터 소정의 배당금을 받기도 한다. 공동체가 추구하는 사업의 목적은 환경 친화적이며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상품들을 거래하면서 이윤을 남기는 것이다.
회의와 모임
매일 아침 7시 30분에서 10시까지 공식적인 사업에 대한 회의를 한다. 사업에 대하여 할 말이 없을 때는 개인적인 문제로 이야기를 한다. 평소에는 참석하지 않다가 자기와 관련된 일에 참석하기도 한다. 그래서 보통 20~30명 정도가 참석하는데, 중요한 것은 참석자의 의사 결정에 따른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문제가 있으면 직접 참석하여 변경시키면 된다.
그리고 화요일, 수요일, 금요일 저녁에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한다. 누구와 같이 일을 못하겠다든가 무엇이 싫다든가 하면 그 사람을 앉혀놓고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월요일, 목요일, 토요일 저녁에는 개인적이고 자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또 일요일과 월요일에는 파티나 큰 모임이 열리기도 한다.
결혼과 아이 문제
미국 사회는 약 70퍼센트가 이혼하는 사회이다. 그런데 이곳이 주류 사회와 다른 것은 이혼은 하지만 친구로 함께 살고, 다른 동료와 결혼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또한 다른 곳과 달리 동성애자가 적다.
아이는 갖지 않으려고 한다. 전반적인 미국 사회의 흐름이기도 하지만, 아이 양육비가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또 아이 갖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분위기가 늘고 있다.
가나스를 방문하려면
공동체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자유로이 방문할 수 있으며, 공동체를 둘러볼 수 있다. 방문자는 하루 숙박비로 35달러를 지불해야 하며 약간의 일을 돕도록 요구받는다. 또한 장기 체류자는 일주일에 200달러 혹은 한 달에 500~ 650달러를 지불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