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 빛 얼굴을 한 사람들
2007.07.24 17:50:09
‘유럽 자연친화적 뒷간처럼 우리 정서와 환경에 맞는 뒷간 개발을…’
최광수
지난 여름 그리스에서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인류 화합의 대 제전 올림픽이 열리는 동안 나는 도버해협을 사이에 두고 영국과 독일의 조용한 시골지역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인류의 화합을 뛰어넘어 자연과 하나 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우리가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백인이었지만 이들의 얼굴을 떠올리면 “똥 빛”이라는 말이 가장 선명하게 다가온다. 건강한 장을 통해 시원스레 빠져나온 똥의 누런 빛깔, 똥을 더러운 폐기물이 아닌 자연으로 돌아가야 할 소중한 자원으로 여기며 거름으로 만들어 농사에 활용하고, 거기서 나오는 작물을 통해 자급자족을 이루어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분명 누런 똥 빛 이었다. 그만큼 자연스럽고 해맑고 건강해 보였다.
수세식 화장실은 현대의 도시문명이 갖고 있는 반환경성을 가장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서, 우리는 대소변이 시원한 소리와 함께 눈앞에서 씻겨나감으로써 가장 위생적이고 안전하게 처리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내 눈앞에서 사라진 대소변은 고스란히 오물덩어리가 되어 땅과 하천과 바다를 오염시키고 있다. 우린 몸속에서 채 흡수되지 못하고 그냥 빠져나가는 영양분이 똥이기 때문에 땅으로 돌아가 적절한 온도 속에서 미생물들에 의해 분해될 경우에 훌륭한 거름이 되어 생명을 살리는 역할을 할 수 있는데 어처구니없게도 물에 섞여 생명을 죽이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자연친화적인 뒷간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화두가 되고있고, 이번 유럽생태공동체 탐방의 목적도 남의 집 “똥간”들여다보기였다. 즉 똥을 통해 동양과 서양이 다시 만나는 시간이었다. 생명을 파괴하고 생태계를 유린하는 산업물질문명으로부터 벗어나 자연 속에서 스스로의 노동력으로 땅을 살리며 인간과 인간,인관과 자연과의 유대를 되살리는 생태공동체에서는 똥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이들이 이루고 있는 공동체 삶은 어떤 방식인지, 그리고 자연친화적인 에너지와 오수처리, 생태건축, 유기성 폐기물의 퇴비화 과정 등도 함께 살펴보았다. 우리 일행은 생태뒷간에 과심을 가진 동학사의 제량스님과 동국대학교 대학원생인 신명옥씨, 그리고 나와 내 연구실의 학생 4명을 포함하여 모두 일곱 명이었다.
영국에서는 서부 웨일즈 지방에 있는 대안기술센터(CAT, Center for Alternative Technologies)와브리디어 마우어(Brithdir Mawr) , 런던 근교의 릴리(LILI, Low Impact Living Initiative) 세 곳을 둘러보았고, 독일에서는 북부 하노버 시 그교의 제벤 린든(Sieben Linden)과 린덴 호프(Linden Hof) 두 곳을 돌아보았다.
대안기술센터(CAT)는 이름 그대로 첨다기술이 아닌 대안기술, 중간기술, 적정기술을 연구, 개발하여 직접생활 속에서 활용하며 교육하는 공동체로서 이곳의 뒷간은 대중적이면서도 교육적인 면을 많이 부각시켰다. 퇴비화장실과 수세식 화장실을 함께 두어 외부방문객들이 자유롭게 선택하여 이용할 수 있도록 했고, 수세식 화장실도 일반적인 수세식과 달리 똥이 오줌과 세척수로부터 분리되어 퇴비화 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일반인의 접근을 쉽게 하면서도 퇴비화장실의 장점을 최대하 살렸다. 분리된 오줌과 우수 등은 풀을 이용한 자연정화 시스템 인과 토양미생물을 이용해 처리하였다. 아울러 절수형 수도꼭지를 설치해 물 사용량을 절약하고, 변기 뚜껑을 열어둘 경우 꼬마전구에 불이 들어오게 하여 깜빡 잊고 나가는 사람이 없도록 하는 부분에 이르기까지 꼼꼼하고 치밀한 노력이 돋보였다. 에너지는 지역특성을 고려하여 수력과 태양열, 풍력 등을 활용하면서 건물마다 자연채광을 최대한 고려하여 에너지 효율을 높였고, 정원쓰레기나 음식물쓰레기와 같은 유기성 쓰레기는 퇴비화 과정을 통해 거름으로 재활용되고 있었다. 특히 이 모든 시설들을 아이들과 일반 방문객, 나아가서 전문가들이 직접 확인하고 체험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전시하고 있었으며 이를 활용한 다양한 교육프로그램도 함께 운영하고 있었다.
브리디어 마우어는 공동체 자체가 자연친화적인 느낌을 주었으며 문명의 이기 사용을 최소화하면서 유기농업을 하는 소규모 공동체였다. 1970년대 문명을 등지고 살았던 히피족의 느낌이 다소 묻어나는 삶의 모습이었는데, 뒷간 역시 자연친화적이었지만 청결성과 위생성이 조금 떨어졌고, 분뇨의 분리 또한 절절히 이루어지지않아 아직은 보안할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웨일즈의 아름다운 자연과 완전히 하나 되어 살아가려는 이들의 노력은 곳곳에서 만나볼수 있었는데, 태양열을 이용한 온수난방, 젠체 에너지소비의 50%를 충당하는 소규모 풍력발전, 경사 낙차를 이용한 소규모 수력발전 등을 통해 필요한 에너지를 100% 생산하여 외부의 전기는 일절 사용하지 않았다. 친환경적인 건축부분에서 단연 돋보이는 공동체였는데, 지역에서 생산되는 나무와 돌, 흙 등을 기본 재료로 이용하고 약간의 고무나 양철파 등은 버려지는 것을 주워다가 재활용함으로써 건축으로 인한 자연 피해를 최소화하고 있었다.
릴리는 모체인 Redfield 공동체의 구성원 중 3명이 의기투합해 만든 실험적 소규모 비영리회사로서 생태뒷간과 바이오디젤, 에코 페인트, 태양열 난방 시스템, 짚 건축 등의 기술을 자체적으로 개발하여 공동체에 적용하면서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외부 수강자들에게 기술을 전수해주는 활동을 하고 있었다. 이곳의 뒷간은 쓰레기통을 이용하여 대소변을 분리하고 똥은 톱밥을 보조재료로 활용하여 퇴비화하고 오줌은 살수여상 공법으로 처리하여 토양에 방류하는 방식이었다. 뒷간의 실내가 매우 정결하고 깔끔하여 이용하기가 편리하고, 악취나 파리를 방지하기 위한 노력이 눈에 띄었으나, 똥과 오줌이 분뇨통에 떨어진 다음 비중 차이에 의해 분리됨으로써 분리가 정확하게 일어나지 않았고, 오줌의 경우 퇴비화하거나 토양에 재이용되지 못하고 기계적 동력을 이용한 처리시설을 거쳐 방류된다는 단점을 갖고 있었다.
독일의 제벤 린든의 뒷간은 탱크저장식, 종이봉투 수거식, 비분리 수거식의 여러가지 방식을 이용하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톱밥, 짚, 화장지를 넣어 퇴비화를 돕고 따로 2차 퇴비화 공간을 만들어 위생적으로 처리하였다. 분리된 오줌은 식물정화시스템(reed bed system)을 거친 다음 과실수와 정원에 살포하여 재활용하였다. 가장 두드러진 점은 대소변 분리형 양변기를 설치하여 이용이 편리하면서도 똥오줌의 분리효율을 증대시켰고, 덥개를 2중으로 설치한 양변기는 용변을 마치고 일어서면 내부 뚜껑이 자동으로 닫히도록 함으로써 악취를 예방하고 미관을 개선하는 효과를 얻고 있었다. 종이봉투 수거식의 경우에는 생분해성봉투를 이용해 주기적으로 퇴비장으로 옮기는데 이용인원이 많지 않은 경우에는 시설이 간단하고 이용에도 크게 불편함이 없어 보였다. 지벤 린든에서는 에너지는 자체 생산하지 않고 주변의 공동체 등에서 생산된 재생에너지를 공급받아 사용하고 있었고, 짚과 나무, 흙을 이용한 생태건축에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었다.
공동체들 모두 저마다의 여건과 상황에 맞추어 다양한 방법으로 자연친화적인 뒷간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었으며, 이중에는 순수하게 공동체 내부에서 독립적으로 설치, 운전함으로써 환경친화성은 높았지만 위생성이나 편리성 등에서 다소 문제가 있을 경우도 있었고, 반대로 고가의 장치를 외부에서 구입하고 전문업체의 기술 지원을 받아서 제작하여 편리성과 위생성을 높인 경우도 있었다.
아직 생태공동체가 많이 만들어지지 않았고, 자연친화적인 뒷간의 적용사례가 매우 한정되어 있는 국내 상황에서, 유럽의 생태공동체들이 자연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쓰기에 편리하고 저렴한 뒷간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해온 과정은 매주 소중하다. 그것은단순히 똥을 처리하고 재활용하는 기술을 얻어오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생태친화적인 하나의 뒷간이 만들어지고 운영되기 위해서는 똥과 밥과 흙을 바라보는 시각의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하고, 생태성과 편리성, 경제성을 아우르는 폭넓은 시각과 경험이 필요하다. 문화적 차이를 인정하고 우리의 정서와 환경에 맞는 뒷간이 개발되어야 한다. 국내의 전통적인 퇴비화 화장실들이 갖는 여러 가지 장점에도 불구하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생태적인 뒷간을 자연스럽게 경험하고 이용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편리함과 위생성, 청결성을 중심으로 한 현대화 작업이 있어야 할 것이다. 영국과 독일의 생태공동체들이 그러했듯 각자의 생활방식과 원칙, 주변 환경, 가용한 자원과 기술 여건 등에 맞는 뒷간 사례들이 속속 생겨날 것이다. 그런 가운데 자연친화적인 뒷간 또한 다양성을 가져야 할 것이다. 도시문명에 익숙한 사람과 단순하고 느린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똑같은 모습의 뒷간이 맞을 리 없기 때문에 다양한 형태의 뒷간이 연구되고, 개발되어져야 한다. 또한 농촌이나 한적한 시골지역을 중심으로 생태뒷간들을 적용하되 점차 도시 인근지역이나 도시 내부의 주택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자연친화적인 방식의 뒷간이 개발되어야 한다.
소식지 2005년 3,4월 호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