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간디학교에선 / 빈사발, 착한사람
2004.11.12 17:10:02
“한 방울의 물에도 천지의 은혜가 깃들어 있고 한 톨의 밥에도 만인의 노고가 스며 있으며 한 올의 실타래 속에도 베 짜는 이의 피땀이 서려 있다. 이 물을 마시고 이 음식을 먹고 이 옷을 입고 부지런히 수행 정진하여 괴로움이 없는 사람, 자유로운 사람이 되어 일체 중생의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양희창님을 빈 그릇 운동 홍보대사로 모십니다. 미래세대와 푸른 지구별을 위해 함께 함을 기뻐합니다”
‘Zero Food Waste’ 빈 그릇 운동에 대해서 들어 보셨나요? 불교 정토회가 주관하여 전국적으로 음식 남기지 않기 10만인 서약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는데 저도 청소년 교육을 하면서 그 의미를 생각하고 있던 터라, 음식 남기지 않는 운동에 적극 참여하게 되었고 홍보대사 역할까지 맡게 되었답니다.
오래전부터 불가에서는 이미 빈 그릇 운동을 해 왔었지요. 불가의 오랜 전통 식사법인 발우공양은 수행과 삶이 둘이 아니라 하나임을 잘 보여주는 삶의 방식이며 자연과 하나 되는 감사의 표현이지요. 발우공양이란 모든 이들이 먹을 만큼의 양을 덜어 먹고 숭늉과 김치 조각으로 깨끗이 씻은 뒤 발우수건으로 닦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아무런 음식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 설거지까지 다 앉은 자리에서 끝내게 되는 완전무결한 과정이지요.
또한 식사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대중과 함께 하고, 찬이 모자라면 서로 십시일반으로 공평히 나누게 되고 식사가 끝난 후에는 공동체 성원들이 모두 모여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갖는 그야말로 따스한 공동체 의식이기도 합니다. 남아도는 음식 쓰레기를 처리할 수 없어 막대한 자본을 투여하고도 엄청난 환경 공해를 유발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운동이 지니는 의미는 자못 크다고 하겠습니다.
우리는 세 끼를 늘 같이 학교에서 먹기 때문에 아이들의 식사습관이 다 눈에 들어옵니다. 어떤 아이는 편식이 심해 자신이 좋아하는 반찬만 듬뿍 가져와서는 밥하고 그 반찬하고만 후다닥 먹습니다. 어떤 아이는 일단 챙겨놓고 보자는 생각에 욕심을 부려 밥이며 반찬을 가득 담아놓고는 반도 먹지 못하고 버리기도 합니다. 느긋하게 먹는 아이보다는 전쟁이나 난 듯이 잽싸게 먹어 치우는 아이들을 보며 많은 이유를 생각하게 됩니다.
밥 한 그릇에 태양과 바람, 그리고 농부의 땀 흘림, 온 우주의 수고가 깃들어 있음을 깨닫는다면 감사하지 않을 수 없으며 거룩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은데 우리는 밥이 생명이며 생명을 나누는 일임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쁘게만 살아 온 겁니다. 게다가 우리는 먹고 살아가는 일에 대한 공부를 진지하게 해 오지 않았던 게 사실입니다.
‘다 먹고 살려고 하는 거 아닙니까?’ 라고 얘기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에 대한 공부는 제대로 하지 않은 거지요. 이제는 먹고 살아가는 것에 대한 공부를 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빈 그릇 운동은 입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린아이로부터 노인까지 누구라도 배우고 실천할 수 있는 만인 운동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렸을 때 아버님께 호되게 야단맞은 기억이 있습니다. 밥풀이 밥그릇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채로 밥을 다 먹었다고 식탁에서 일어서는데 아버님께서 엄청나게 화를 내시는 것이었습니다. “복을 까부는구나, 깨끗이 다 먹어라, 그렇게 살면 복이 달아난다.” 어린 마음에 뭐 그런 걸 가지고 성화이신가 싶어 야속했는데 이제와 생각해보니 참 옳은 말씀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홍보대사가 되고 나니 음식을 남기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 일단 음식을 적게 들어 먹게 됩니다. 그리고 적게 먹다 보니 여유를 갖고 천천히 먹게 되고 음식 먹는 즐거움과 감사가 더해지는 것 같습니다. 내일 점심때에는 빈 그릇 홍보용 앞치마를 두르고 다소곳이 잔반통 앞에 서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입니다. 싱긋이 웃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잔반통의 음식이 줄어들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큰 사발, 큰 일꾼이 아니라 ‘빈 사발, 착한 사람’이 되도록 말입니다.
양희창(간디청소년학교 교장)
[출처 :라이프매일]
작성일: 2004년 10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