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양심씨의 아주 특별한 ‘만남’

2007.05.21 10:16:27

서울 양천구 목동, 강남 대치동에 비견되는 ‘교육 특구’로 알려진 지역이다. 입시교육을 중심으로 자녀에 대한 열정이 남다른 어머니들 사이에 신선한 바람이 불고 있다. 그것은 다름아닌 빈그릇운동. 음식물을 남기지 않는 것을 중심으로 조리과정에서 발생하는 ‘생쓰레기’를 말려 퇴비로 만드는 환경 순환 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것. 특히 이 운동을 부녀회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펼쳐나가고 있는 대원 칸타빌 아파트의 사례는 주목할 만하다.














– 이름 : 박양심 (부녀회장/ 보통 회장님이라고 부름)


– 직책: 양천구 목동 대원 칸타빌 아파트 부녀회장


– 연령 : 60세 넘음


– 연락처 : 01x-000-276x


 


 


박양심씨는 타고난 부녀회장이다. 친정아버지, 아픈 동서 등을 돌봐야 하는 상황이라 집에 있는 날이 별로 없으면서도 동네일에 앞장서서 도맡아 하고 있다. 특히나 젊은 주부들에게는 맏언니 역할을 해 주민들 사이에서 인기가 대단하단다. 이번 인터뷰 역시 안 하시겠다고 손사래를 치셨지만 막상 만나보니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에 수줍음 많고 푸근한 웃음을 가진 우리네 어머니의 모습이다. 삭막한 아파트에서 공동체 문화를 만들어가는 사람, 박양심 아줌마가 오늘 특별한 만남을 위해 강화도 마리학교로 떠났다.



토요일, 근무가 없는 날임에도 직접 승합차를 몰고 대원칸타빌로 박 회장과 부녀회원을 태우러온 양천구 음식물쓰레기 팀장 최병호님과 담당주임 박희선님께서 주민들이 모아놓은 생쓰레기 자루를 차에 싣고 있다. 양천구는 지자체로는 가장 먼저 빈그릇 운동에 동참하고 나서 관공서에서 환경운동을 펼쳐나가는 모범지역이다.


여기서 잠깐! 생쓰레기란, 조리하는 과정 중에 나오는 야채 다듬은 껍질, 과일껍질, 달걀 껍질, 보리차찌꺼기 등 염분이 들어가 있지 않은 식물성 음식물 찌꺼기를 의미한다.


 


 


대원 칸타빌 아파트에서 생쓰레기를 말리기 시작한 것은 2월부터다. 지난 2월 9일 처음 배출해서 수거를 했다. 현재는 주1회씩 모아서 강화도에서 무농약 농사를 짓는 한재호씨가 가져가고 있다. 현재 약 70세대 정도(100리터짜리 마대포대 1포대반 정도)가 참여하는 수준. 총 510여세대가 살고 있는 이 단지에서 15% 정도가 참여하고 있지만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 참여하는 주민들은 시도자체가 무척 신선하고 재미있다는 반응이란다. 주민들 대다수는 생쓰레기를 만들어내기 전에는 개념 없이 무조건 가져다 버리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쓰레기양이 줄고 나름대로 사회에 기여한다는 마음이 드니까 좋단다.


 



이날 함께 간 부녀회원 좌측부터 부녀회장 박양심, 통장 송옥심, 부녀회원 박희숙, 안미선씨.


 


특히나 박양심 부녀회장은 최근 식구들, 손자들이 오면 “할머니 어디다 버릴까요?”하고 물어보는 게 기특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어릴적부터 산교육이란 게 이런거구나 싶다. 그리고 주민들을 만나면 “얼마나 말려서 버렸어요?”하고 물어보는 게 인사가 되었다.


“부산에 사는 며느리한테도 해보라고 권했어요. 젊은 사람들은 과일을 많이 먹으니까 나올게 많잖아요.”


빈그릇 운동하면서 생활 전반에 변화가 시작되었다. 우선 그릇들이 작은 것으로 바뀌었다. 물주전자부터, 냄비, 밥솥 등 모두 작은 것으로 바꾸니 전기세도 절약되고, 가스비도 줄었다. 가족의 호응도 든든하다. 어느날 집에 손님이 온다고 해서 생쓰레기 말리느라 펼쳐놓은 것을 안보이게 치우려고 했더니 남편이 “냄새나는 것도 아니고 좋은 일 하는데 그 사람들이 보고 가서 하면 좋은 거 아니냐”고 할 정도로 앞장서고 있단다.


 


대원 칸타빌의 빈그릇운동은 반상회를 통해서였다. 이곳에서 환경운동단체인 (사)에코붓다측에서 음식물을 남기지 말자는 취지의 ‘빈그릇 운동’ 소개와 교육이 이뤄졌고, 이후 생쓰레기를 말려서 배출하는 시도를 한 것이다. 그리고 이 생쓰레기는 강화도에서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한재호씨가 직접 수거해서 퇴비화하고 있다고 한다. 도농간의 순환시스템이 마련된 것이다.


 




 


오늘은 직접 강화도에 찾아가 인사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첫 만남’이다. 마침 이날은 한재호씨가 농사를 짓는 곳 인근에 위치한 대안중학교인 마리학교의 개교기념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한재호씨는 이 학교에서 농사와 목공, 울력을 가르치는 선생님이기도 하다.



이날 방문은 에코붓다 김윤희 간사, 서울정토회 환경사업부 윤태임 부장과 자원활동가 이성미님께서 부녀회원들과 함께 학교 곳곳을 둘러보고 밥도 먹으며 소풍 나온 것처럼 신나게 돌아다녔다. 한재호씨가 도착하기 전, 마리중학교 교장선생님과 강화 군수님과 함께 모여 환경운동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사진도 찍었다.






 


마리중학교 1학년 아이들의 전시물. 마리학교는 중등교육과정을 가르치는 기숙형 대안학교로 현재 50여명의 아이들이 공동체 생활을 하며 공부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페미니즘’ 수업이 있어 자신이 쓸 생리대를 직접 만들어 보며 섬유와 유통과정, 바느질, 환경에 대한 교육을 통합적으로 한다.








이윽고 한재호씨가 나타났다. 조금은 굳어있는 표정, 함께 둘러 모여 생쓰레기 활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재호씨는 먼저 “약속을 했으면 꼭 지켜 달라”고 했다. 지난주에 어느 동에서 배출된 것을 일부러 가져오지 않았다고 한다. 몇 번 덜 마른 포대가 있어 이야기를 했는데 고쳐지지 않아서라고 한다. 한씨가 이렇게 처음부터 강조하는 이유는 그만큼 애정이 있기 때문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이해를 위해서 몇 가지 설명을 덧붙였다.


 


한씨는 이러한 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기름값도 안 되지만 일부러 서울까지 달려와 생쓰레기를 수거해 가고 있다고 말했다. 농약이나 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농사를 짓는 농민 입장에서 정확히 생쓰레기만 말려 주면 그만한 퇴비거리가 없다는 것. 하지만 덜 말리면 옮기는 과정에서 무게도 늘어나고 쉽게 부패해 악취가 나기 때문이다. 그런 음식물 쓰레기를 들여오는 것은 동네 주민들이 반기지 않는단다. 게다가 지금까지 배출되었던 생쓰레기는 겨우 한씨의 텃밭에 거름이 되는 수준. 강화에서 유기 농사를 짓는 농민들이 많기 때문에 나오는 대로 잘 쓰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다소 쑥스러워하면서 반가운 눈빛을 보이는 그의 얼굴이 참 순박하다. 반갑게 맞이하는 박양심 회장과 함께 사진을 한 컷 찍었다.




“저는 농사짓는 입장에서 이것을 쓰레기라고 보지 않아요. 이것은 음식 자원이에요. 적당히 먹고 남은 찌꺼기를 다시 음식을 생산할 수 있는데 활용할 수 있잖아요. 지금도 북한에는 굶고 있는 애들이 있는데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버리고 있어요.”


한재호씨는 음식물 퇴비화를 이야기하며 자주 만나서 이야기하고 의견을 나누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함께 참석했던 부녀회원들은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만남을 통해 자신들이 하는 일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고, 확신을 얻은 듯 했다.


대원 칸타빌에 빈그릇 운동을 교육했던 에코붓다 이성미씨는 “아파트 부녀회원들과 통반장들이 빈그릇운동과 생쓰레기 퇴비화에 대한 교육을 받고 의식이 바뀌면서 자발적으로 참여한다는 점이 놀라운 성과에요.”라고 말한다.


대부분 가정주부인 부녀회원들이 중심이 되어 단지 내 방송을 하거나 통합 반상회를 개최하는 등 주민홍보를 담당하고, NGO단체인 에코붓다는 주민교육과 수거해 갈 농민을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했다. 또한 구청은 현수막과 생쓰레기 수거용 마대포대 등을 지원해주고 있다. 주민과 관공서, 도시와 농촌, NGO단체와 일반 시민간의 유기적인 결합을 일구어내는 시도가 주목할 만 하다. 농민 한씨는 특히 올 가을에는 생쓰레기가 퇴비가 되어 일궈진 밭에서 나온 농산물을 대원칸타빌로 직거래할 예정이다.


 



이 만남 후 대원칸타빌 부녀회는 지난 4월 말일 반상회를 통해 부녀회비를 갹출하여 비닐을 쓰지 않도록 유도하기 위해 음식물 쓰레기 분리수거함을 대량구매 해 주민들에게 나눠주고 생쓰레기의 필요성을 홍보하기도 했다.




양천구 최병호 팀장은 “관내에서 빈그릇운동과 생쓰레기 퇴비화운동이 함께 시도 되는 곳은 처음으로서 이곳의 성과를 토대로 앞으로 구청의 음식물수거 시스템의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겠다”는 예측을 했다.


즉 현재는 조리 후 찌꺼기까지 모두 한꺼번에 수거해 가는 체계이나 앞으로는 음식물쓰레기도 조리 전과 후로 이원화해서 수거하는 체제로 바뀔 가능성도 검토해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사례들이 수집되어야 관에서도 적극적으로 정책으로 발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향후 친환경농업을 하는 농민(아직은 양이 적어 개인차원에서 하고 있으나 농민회 차원으로 넓혀지면)과 연결되어 아파트 단지에서 나오는 생쓰레기를 퇴비로 쓰고 이 퇴비를 이용해서 생산된 농산물을 아파트 단지 주민들이 구입해 주고 서로 교류한다면 훌륭한 도농 공동체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렇게 조금씩 천천히 빈그릇 운동의 성과가 곳곳에서 자라나고 있었다.


한 그루의 묘목을 심으면 언제 자랄까 싶지만


어느새 그늘이 되어주는 나무를 키우듯,


물을 주고, 사랑을 쏟아내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 따뜻함을 느끼며 내 마음도 포근해짐을 느낀다.


 


박양심 회장님은 오래 지속되어 뿌듯한 결과물이 되면 다시 만나고 싶다고 하셨다.


다가오는 여름, 음식물을 말리다 보면 벌레도 생기고 냄새도 날 터다.


우리의 살림 베테랑 대원칸타빌 아줌마들이 어떤 지혜를 짜낼까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나를 살리고, 내 가족을 살리고, 나아가 지구를 살리는 


빈그릇 치맛바람이 더운 여름을 식혀줄 것만 같다.


 

bottom_bann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