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적인 작은 실천이 기적을 만들어 내더라 | 김경희
최광수(이하 최) : 정토회와의 인연은 언제였나?
김경희(이하 김) : 2000년 5월에 생태강좌를 정토회에서 진행했다. 그 당시 내가 환경에 예민한 시기였는데 지인이 들어 보라 해서 왔었다. 그 때는 생태라는 말을 모를 때인데 들어보니 강좌가 신선했고 개인의 실천을 이야기했다.
최 : 첫 인연이 다른 분과 달리 환경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고 시작하였다.
김 : 그 강좌의 강사님이 좋았다. 유정길님, 보수법사님, 원불교교주님, 문성희씨가 쓰레기와 먹거리 두 강좌를 했다. 그 후로도 정토회가 하는 일이 좋아서 계속 다니게 됐다.
최 : 나도 개인적으로 정토회에 와서 환경을 만나게 됐지만 선명한 첫 기억은 그 강좌였다. 정말 큰 경험이었고 요즘도 환경강좌를 하면서 그 때 이야기를 한다. 그때 이후로 삶이 변화했다면 어떻게 달라졌나?
김 : 달라졌다. 수행적 관점으로 이야기해야하나?
현희련(이하 현) : 환경실천도 중요한데 정토회 특징이 환경수행운동 관점을 가지고 있지 않나? 수행적 관점과 환경실천이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밝혀내면 단순히 환경실천이 아니라 수행적 관점을 가지고 환경운동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에 수행적 관점으로 질문을 한다. 활동을 하면서 본인의 삶이 어떤 변화를 일으켰는지 설명 부탁드린다.
김 : 나는 정해진 삶을 살아왔다. 대학 한 번 재수 안하고 무난한 인생을 살면서 잘살고 있구나 생각했다. 예전에는 환경문제 원자력발전소건설, 폐수문제, 태산 같은 쓰레기 문제가 대두되면 세상이 어떻게 될 것 같고 제도 탓만 했는데 강좌를 듣고 정토회를 다니면서 개인의 작은 실천이 기적을 일궈내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작은 씨앗이 되는구나를 느꼈다.
2001년 북한에 아사자가 발생하고 내복 보내기가 한참일 때도 내가 살아온 방식으로는 빨리 통일의 당위성을 생각하고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통일의 물꼬를 터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때 북한의 실정을 알려주는 영상물을 같이 보던 어르신들이 내복 값에 보태라고 성금을 내는 모습을 보면서 깜짝 놀랐다. 생각이 많은 내가 있더라. 수행 안하고 정토회의 강연을 듣지 않았으면 제 나름대로는 환경실천가이고 통일운동가라고 생각하면서 의미있는 삶을 산다고 생각 했을 텐데 결국은 그것에 대한 씨앗을 튀우는 것은 그들의 마음을 알아주고 작은 실천을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지렁이 키우면서 음식물쓰레기 줄이고, 일회용 쓰지 말라고 홍보를 하면서 힘이 생긴 것 같다.
빈그릇운동 15만 명을 진행할 때 장사군 취급 받고, 학교나 단체에서 설명을 하고 실천을 끌어내는 경험이 없다보니 많이 힘들었다. 이 운동이 좋은 것은 알겠는데 그들을 실천으로 이끌어 내기에는 너무나 많은 저항들이 있었다. 그러면서 15만 명을 달성했는데 세상을 바꾸려면 10만은 표도 안나니 백만인 서명운동을 제시하더라. 그때 아이디어를 내서 교육감을 찾아가서 학교에 공문발송을 요청했다. 학교에서는 흔쾌히 협조를 해주셨다. 그런데 서명을 하면서도 회의감이 들고 효과에 의문을 가졌었다.
그런데 학교에서 잔반을 안남기기 위해서 그래프를 그려가면서 빈그릇 달성율을 표로 만들어내는 것을 보면서 주변의 서명한 사람들이 변해 가는 모습을 보면서 내안의 저항감이 없어지더라. 운동을 하면서 기적을 보인 부분들, 긍정적으로 만들어내는 사람들을 보면서 기적은 다른데 있는 게 아니구나, 사람들이 씨앗이 되는구나 생각했고, 당연히 해야 될 것이지만 내 안의 저항감을 보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실천 권유를 하면서 느끼는 불편함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곳이 정토회인 것 같다.
두 아이를 줄곧 천기저귀만을 사용해서 키우고, 주변에서 먹거리를 찾는 등 작은 실천을 했었고 권하지는 않았다. 내가 좋으니까 했었는데, 이에 대한 환기를 에코붓다가 돌이켜 준 것 같다. 작은 실천이 기적을 만든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다.
최 : 환경문제의 관심이 새로운 시각이 열리면서 실천의 깊이가 달라진 것 같은데 환경만 해도 되는데 수행은 왜 했나?
김 : 불교대학 과정 중에 출가열반재일에 참가하게 되었다. 8일 동안 법당에 상주하면서 출가한 듯이 살아보는 것인데 아이가 어려서 출퇴근을 하였다. 끝 날 무렵 새벽 4시쯤에 일어나 주위에 사는 다섯 명을 모아서 예불을 진행해봤다. 출가한 마음이 나에게는 많이 와 닿았다.
최 : 깨장은 언제 다녀왔나?
김 : 2001년 하반기에 불교대학 시작하고 깨달음 장, 나눔의 장을 다녀왔다.
최 : 가정에서 이미 환경실천을 하고 있었는데, 정토회에서 생태강연을 듣고 이전과 이후에 달란진 점은 무엇이 있나?
김 : 환경실천을 해 보려고 바뀌지 않은 정책 탓을 했다면 같이 하자고 권하는 여유가 생기고 안되면 안되는 한계를 알고, 어떻게 하면 될까로 바뀌었다. 탓하고 안되는 것에 불안해하는 것보다 전체를 보는 눈이 생긴 것 같다.
최 : 집에서 하는 실천은?
김 : 면 생리대 사용하기. 휴지 안 쓰기, 뒷물하기, 지렁이 키우기를 하고 있다.
뒷물수건을 사용하기에도 에피소드가 있다. 에코붓다에서 백혜은씨가 동래정토회에 와서 뒷물이야기를 해주더라. 페트병이나 바가지에 물을 받아서 씻는다고 설명하는데 난감했다. 휴게소에서 볼일을 볼 때는 어떻게 하나 물어봤더니 양변기에 올라가서 한다고 하더라.
이야기를 듣고 남편이 실천을 하더라. 화장실을 나왔는데 변기 주변을 보니 물이 흥건해서 더럽다고 느껴지더라. 어느 날 남편이 실천하는 것에 잔소리만 하다가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서 바가지에 물 떠가지고 한번 시도를 해봤다. 해 본 느낌은 내 팔이 이렇게 짧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쁜 똥을 누면 닦을 것도 별로 없다. 내 똥을 관찰하게 되고 내 몸도 관리가 된다. 바가지에서 샤워기로 바꿨다. 줄을 길게 해서 샤워기 끝이 온오프 되도록 했다. 큰딸도 처음에는 못하겠다 하더니 어렸을 때부터 습관이 되었고 자기도 좋으니까 본인이 스스로 하더라. 지금 초등학교 4학년인 둘째도 3학년 말부터는 자기가 한다. 우리 집은 휴지 안쓰고 뒷물하기 때문에 손님 오면 다들 놀래고 당황스러워 한다. 뒷물을 해주면서 애들하고 관계도 좋아졌다. 남편한테도 고맙다.
정토회에서 음식물쓰레기를 회관 밖으로 배출하지 말라는 원칙이 내려왔을때 옥상에서 말려 보기도 하고, 발효 흙을 이용해 퇴비 만들기 등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해 봤다. 그러던 중 지렁이는 2003년 에코붓다에서 법당에 지렁이 분양을 할 때쯤 우리 집도 분양 받아서 토분 하나로 시작했다. 음식물쓰레기 처리하는데 한계가 많았다. 그래서 토분 6개를 사서 음식물쓰레기를 해결했다. 처음에는 과다하게 음식물쓰레기를 줬더니 날 파리가 많이 생겼다. 잘 묻어주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그러다가 남편이 토분의 한계가 많다고 큰 화분상자를 만들어서 뚜껑 열리고 닫히게 하여 지렁이상자를 만들어 줬다. 지금까지 11년째 안정적으로 키우고 있다.
최 : 물이나 전기 같은 경우는 어떤가?
김 : 제가 예전에 내 마음의 푸른마당을 진행했었는데 자료가 없었다. 개인이 실천을 하면서 저항들속에서 전체적으로 실천해보고 사람들에게 제안을 할 것인가라던가 핵발전소나 방사능폐기물 주제들에 대해서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에 관한 자료가 없었다. 전기 같은 경우 원자력발전소와 방사능폐기물이 예전에는 해양투기 했었는데 이제는 방사능처리장으로 가서 엄청난 돈이 드는 과정을 공부하면서 같이 이야기했다. 그런데 같이 참여한 분들이 불을 왜 꺼야하는지에 대해서 잘 모르더라.
그래서 관리비고지서의 전기는 kw와 물은 ton량을 보기로 했다. 전기와 수도 사용한 양을 보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이번 달을 기준으로 하여 다음 달에는 좀 더 줄여보자고 계획을 세우거나 이번 달에 더 나온 전기와 수도의 사용량을 보면서 나의 생활을 살펴보게 되었다. 관리비고지서를 확인하는 것만 해도 삶에 깨어 있게 된다.
현 : 지금 전기세는 얼마나 나오나?
김 : 233kw 2만원대 정도 나오고, 물은 10톤 ~13톤 5~6천원 정도 나온다. 전기도 정토회 들어오면서 자발적인 불편을 선택했는데 나도 전기 없이 살 수 있으면 살아보자고 하면서 전기제품 안 쓰는 것으로 실천하고 있다. 식은밥이 생기면 물 넣고 찌거나 밥솥째 가스렌지에 올려 데워먹는다.
최 : 환경실천을 대학 다닐 때는 안했을 것 같은데 어떤 계기로 실천을 시작하게 되었나?
김 : 친정아버지 역할이 컸다. 내가 어렸을 적에 밀가루 푸대를 구해서 물에 담궈놨다가 다림질로 다려서 책거풀을 싸고, 붓글씨로 책표지를 써주셨다. 지금 아버지가 궁도장에 다니시는데 여기저기에 슬로건이 붙여 있다. ‘전기 끄고 나가자’, ‘물 잠궜는지 확인해라.’ 다 아버지가 쓰신 거다. 아버지가 계시는 데는 환경 실천을 잘 하고 있다. 모든 걸 몸으로 많이 보여 주셨다. 어릴 적에는 답답했었다. 그런데 그것이 은연중에 습관으로 배더라. 휴지사용량도 3칸, 6칸을 정해주셨다.
최 : 그렇게 절약하시면 엄마는 싫어하지 않으셨나?
김 : 엄마는 항상 바빴고 여러 가지를 직접 만들어 주셨기에 좋아하셨다. 엄마도 워낙 아끼는 분이다.
최 : 태생적으로 몸에 배었던 실천력이다.
김 : 아버지는 직장에서 종이가 있으면 다 가지고 와서 연습장을 묶음으로 만들어주셨다. 연필도 깍아 주시고 몽당연필은 쓰기 편하게 만들어 주셨다. 은연중에 배운 것 같다.
생각으로는 나 혼자서 하다가 안하는 사람 보면 불편했었다. 안하는 사람 탓하는 마음이 있었다. 이제는 내가 행복해서 실천하면 된다싶어 가볍게 제안도 해본다.
최 : 신혼 초에 신랑하고 환경실천을 하면서 다툰 적은 없었나?
김 : 제가 지독하게 지키지는 않았다. 성향이 비슷하다. 남편도 10년 입은 잠바를 그대로 입고 다닌다. 장모님이 양복을 해준다고 해도 늘 입지 않는다고 마다하더라. 환경실천을 한다기 보다는 어르신들이 살던 삶이 좋아 보여서 둘 다 실천한 것 같다.
환경강좌를 들으러 가고, 책을 같이 읽기도 하면서 지식으로만 가지고 왔고 체계적이지 못한 것들을 에코붓다에 와서 개인의 실천으로 전환이 많이 됐다.
현 : 시장 볼 때 투명망, 방수망 쓰나?
김 : 현재는 장바구니는 들고 다닌다. 장바구니 안 들고 간 날은 장은 보지 않는다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도 비닐이 많이 생긴다.
현 : 장바구니속에 비닐이 있지 않나?
김 : 마트나 재래시장을 가면 방수망 들고 간다.
최 : 제가 알기로 댁에서 공동육아를 했지 않나? 같은 아파트에 사시는 분들 삶과 비교해서 김경희님의 소비지출 패턴은 어떻게 다른가?
김 : 같이 살면서 마을 자체를 살려 보려고 만든 것이니까 공동육아라는 이름으로 가지만 옛날 마을에는 여러 패턴의 사람들이 있지 않나? 그리고 마을이 그것을 품고 가지 않나? 그런 것들을 살리기 위해 마을을 만들어 보자고 시작했다. 우리는 다른 집 아이들을 불러다 밥 먹이는 것을 제일 좋아했던 것 같다. 한 마을에서 같이 아이를 키운다. 공동육아 엄마들은 다른집 숟가락, 젓가락, 생활습관 등을 다 안다. 가구마다 잘사는 맞벌이 가구도 있고, 직종도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고, 우리 집처럼 외벌이도 있지만 삶의 패턴은 비슷해지는 것 같다. 마을사람들끼리 생활공동체를 하다 보니 생활 패턴도 비슷해지는 것 같다. 그리고 편차가 별로 없다. 맞벌이 부부들을 위해 협동조합형태로 밥집도 하나 만들려고 한다. 주점도 하나 만들어 보자고 하고 마을 안에서 공동체를 계속 만들어 가는 것이다.
김성균(이하 김) : 공동체 이름이 어떻게 되나?
김 : 북구 공동육아 협동조합 쿵쿵 어린이집이라고.
최 : 딱히 쉽지 않겠지만 살아가면서 내 삶의 중심은 무엇인가? 나의 주관심사는 무엇인가?
김 : 10년 넘게 수행하시는 분들과 같이 지내면서 초조해하거나 두려워하거나 생각이 많거나 알게 모르게 옳다는 생각들을 할 때 여유있게 나를 볼 수 있는 마음이 생긴 것 같다. 매사가 흔들릴 수는 있지만 세월이 사람을 여유있게 하는 것 같다. 지금도 큰 문제가 터지면 걱정하거나 힘들어하지 않고 호흡을 한 번 고를 수 있는 여유는 생긴 것 같다. 매사 감사하면서 살자. 아침에 눈 뜨고 기도하면서 가족이 같이 한 집에서 눈을 뜬다는 것에 대해 행복하다. 지금 이대로 감사하다.
엊그제 시어머님 제사가 있었는데 시어머니에게도 너무 감사한 거다. 어머님이 우울증이 있으셨는데 시아버님 돌아가시고 심해지셨다. 내가 우울증을 앓는 시어머니를 못 봐내고 있더라. 우울증 약을 끊게 하려고 굉장히 많이 싸우고, 결국은 깨달음의 장을 다녀왔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는 말씀에 힘을 얻어온 것 같다. 그 후 어머님과 친구 같이 지낼 수 있는 내 안의 여유가 생긴 것 같다. 기도하고 나를 돌아보고…..이 힘이 어디서 났을까? 수행의 힘이라는 게 이런거구나! 가랑비에 옷 젖는 게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까지 무난한 생활을 하면서 한 번의 일탈도 하지 않았는데 정토회는 그런 일탈의 기회를 줬다. 빈그릇 백만인서명운동, 일만명 전법운동, 법륜스님 300강 등 일이 내게 주어졌을 때 재미있겠다하는 마음과 함께 가만히 그냥 살라는 무의식이 올라온다. 바깥으로 일탈하는 게 나쁘지는 않았고 쌓이면서 내 업식을 보게 되었다.
최 : 그럼 법당에 매일 출근을 하나?
김 : 매일 출근한다.
현 : 동래공동체 이루고 있는 사람들 중 정토회원이 있나?
김 : 마을 전체로 보면 10%정도 있다. 스님 알고, 깨달음의 장 다녀오고, 교사단체는 교사들을 위한 기획법회 요청을 하더라.
최 : 결혼을 하고 육아를 시작하면 육아전과 후가 인생이 바뀌지 않나? 육아 전에 사회생활 하던 기억이 나나?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살았나?
김 : 컴퓨터 그래픽을 했었는데 어느 날 문득 살면서 스승님을 잘 만났다는 생각이 들더라. 직장 생활할 때 포토샵의 대가를 만났다. 그분에게 교육을 받고 강의도 하고 책도 만들면서 여러 가지 일을 많이 했다. 그러면서 상당히 많이 배웠다. 정토회 와서 생각해 봤는데 여기 쓰이려고 내가 배웠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또 도서관이나 여러 군데서 인생에 스승 같은 사람을 만나고 인생의 전환기가 많았는데 나중에 와 보니 정토회에서 잘 쓰이고 법륜스님을 만난게 가장 크다고 느낀다.
최 :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하다.
# 에코붓다 소식지 2014년 1-2월 호에 실린 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