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운동의 핵심, 천천히 꾸준히 즐겁게! | 이수진

11월 경 단순히 환경 교육인줄 알고 갔던 워크숍이 뜻밖에도 환·경·강·사·양·성 워크숍이었다. 큰 부담을 느꼈지만 ‘환경 워크숍에서 느꼈던 것을 조금이나마 전달해보자’라는 생각에 용기가 나서 서대문 환경팀 일을 해보겠다고 했다. 눈 딱 감고했던 환경실천이 은근히 재밌기도 했다. 우선 강사 워크숍에서 받은 자료들을 토대로 환경부의 최신자료를 보충해서 12월에는 빈그릇운동을 각 불대와 수행 법회마다 진행해 보았다.

30분 정도의 짧은 내용이었지만 생각보다 호응이 좋았다. 특히 예전에 환경교육을 받은 직후는 열심히 실천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흐지부지되었는데 다시 교육을 받게 되니 마음이 새롭고, 정기적으로 이런 자리가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푸른 마당을 기획하게 된 원동력이 되었다.

이때 실수한 것이 빈 그릇 하면서 2주정도 체크해볼 수 있는 체크 리스트를 나눠주고 의무적으로 제출하도록 한 것이었다. 환경실천이 아무리 좋아도 어디까지나 자발성과 즐거움이 핵심인데, 체크 리스트를 못 한 경우 다음번의 교육이 부담이 될 수 있다. 이렇게 무리를 했던 이유를 돌이켜보니 내 마음이 무거워진 것이 원인이었다.

서대문지부는 꽤 오랫동안 환경팀이 없었기 때문에 환경밴드를 참고해서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지부에서 환경팀을 꾸려보고 지렁이엄마를 정하고, 음식물쓰레기 성상조사를 시작하고, 분리수거함을 만들었다. 그리고 매주 혹은 격주로 공지사항 시간에 3분정도의 짤막한 환경영상을 시청했다.

환경팀 회의를 통해 1월의 내마음의 푸른마당을 가장 난이도 낮은 주제인 ‘개인컵 사용하기’로 정했다. 그리고 지부에 비치되어있는 컵을 모두 치우고 지부 내에서도 개인컵을 사용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나중에 보니 이 때 경험이 없어 용기(?)있게 저런 고난이도 시도를 선택한 것 같다.

이후 ‘지구온난화’라는 주제로 학습을 하고 구체적 실천 과제로 개인컵 사용하기를 했다. 도서관에서 지구온난화에 관한 바이블인 앨 고어의 <불편한 진실>을 중심으로 <고릴라는 핸드폰을 미워해>, <지구온난화의 부메랑> 등의 책들을 빌려 공부를 했다.

EBS의 ‘하나뿐인 지구 시리즈’도 좋은 자료가 되었다. 종이컵의 재활용율 등에 관해서는 인터넷 검색과 환경부 자료를 인용했다. 푸른마당의 진행 자체에 관해서는 에코붓다에 실린 수기가 큰 도움이 되었다. 신기한 것은 관심이 있으면 환경에 관한 자료는 곳곳에 잘 정리되어있다는 점이다. 물어 볼 곳이 없어서 생각나는 대로 자료를 조사했던 것이 오히려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개그 코너의 제목이 될 만큼 유명한 <불편한 진실>은 아이러니하게도 독자가 적은 책 중에 하나다. 심지어 <불편한 진실>이 학술서가 아니라 슬라이드 쇼를 출판한 것이었다는 것도 미처 몰랐다.

고작 텀블러를 사용한지 두 달도 안 된지라 가벼운 마음으로 공부해볼까 하고 시작했는데, 과학적 근거를 들여다볼수록, 관심을 가질수록 발등에 떨어진 불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지구온난화라는 말은 너무 온건한 것 같아서 푸른 마당의 제목도 “지구가 뜨거워진다”로 바꾸었다.

이대로라면 영화 투모로우처럼 지구 멸망이 가까워온 것은 아닐까. 우스운 얘기지만 이미 암 걸린 사람이 오늘 암 선고 받았다고 절망할 것은 없는데 나는 그 때 꼭 그것처럼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사이렌을 울리는 심정으로 빨리 사람들에게 알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급해지니 모든 문제들이 엉켰다. 내가 할 때는 즐거웠는데 남에게 제안하는 과정이 힘들었다.
“천천히, 꾸준히, 즐겁게” 이것이 환경 운동의 핵심이다.

실제로 일을 하다 보면 잊기 쉬운 원칙이다. 불과 몇 달 전 나도 종이컵을 쓰는지 인식하지 못하던 사람인데 ‘에코붓다로서 다른 분들에게도 내가 체험했던 것을 알게 하는 계기만 만들어주자’ 라고 마음을 다잡고 다시 기도로 명랑함을 되찾기로 했다. 인연 닿는 만큼만 최선을 다하자고 마음을 가볍게 했다.

‘푸른마당’ 당일. 활동가분들의 인도여행에도 불구하고 17분이나 참여하여 성황리에 ‘푸른마당’을 마쳤다. 나도 배우는 입장이고 그저 공부한 것을 나눈다는 마음으로 임하니 편안했다. 게다가 다른 참가자들의 나누기를 들으니 서대문법당의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내공에서 우러난 다양한 노하우들을 배울 수 있었다.

야간 불대 담당자분이 개인컵 안 가져오신 분들에게 물을 주지 않으셔서 밖에 나가서 오뎅 국물을 마신 이야기를 들으며 한참 웃기도 하고, 같은 가을불대 분들이 정토회 다니면서 배우다 보니 내가 실천은 잘 못해도 다른 곳에 가면 일회용품 사용하는 게 이제 눈에 들어온다는 말씀에 내가 작은 씨앗이 된 것 같아 참 뿌듯했다.

이제 오른손에 텀블러를 들고 왼손에는 손수건을 들고 환경의 여신상처럼 당당하게 거리를 활보한다. 환경 팀 회의가 있던 날을 회상한다. 도반님과 함께 온 아이가 지렁이 상자를 구경하다가 지렁이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신기하다며 구경했다. 손 안에서 꼼지락거리는 것을 한참 들여다봤다. ‘생태적 삶, 환경적 교육’ 이런 어려운 말들은 제쳐두고 그저 지렁이와 함께 함빡 웃는 아이의 미소가 지구의 미래이지 않을까.

# 에코붓다 소식지 2014년 3-4월 호에 실린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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