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 강을 보려면 강을 직접 걸어야 | 이리나
이리나 | 청년포럼 중앙운영위 소속 현장탐방프로젝트 스텝대 학생
평화재단 청년포럼에서 지난해 처음 시작한 현장탐방프로젝트는 우리사회에서 청년들이 한번 쯤 고민해보고 궁금했던 곳들을 찾아 직접 탐방하며 배워가는 프로그램입니다.
작년 4월에 시작한 현장탐방프로젝트가 처음 간 곳, 경북 영주 모래가 흐르는 강 ‘내성천’.
우연인지 인연인지 올해 첫 현장탐방프로젝트가 다시 찾았습니다.
사실 내성천은 작년만 해도 두 번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2009년부터 진행된 4대강사업으로 해가 갈수록 강은 변하고 있는 강이기에 우리의 관심이 더 절실한 곳으로 다가왔습니다. 작년에는 내성천 지킴이에 앞장서고 있는 지율스님의 다큐멘터리 ‘모래가 흐르는 강’의 개봉으로 더 큰 관심과 궁금증을 안고 있던 참가자들이 실제로 다녀온 뒤로 아름다운 모래 강 내성천 앓이가 시작됐습니다.
이후 입소문이 퍼졌는지 청년학교 수료생들 사이에서는 내성천 꼭 한번 가고 싶은 곳, 가야하는 곳으로 통했습니다. 그렇게 아름답고도 안타까운 내성천을 향해 찾아간 강은 그 새 더 헐벗은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번 현장탐방은 4월5일 식목일을 맞아 영주댐이 완공되면 물속에 잠길 수몰예정지인 영주 평은면 강둑 언저리에 있는 지율스님 텐트주변으로 청년들이 나무심기를 진행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서울과 대구 부산 등 각지에서 모인 청년들은 본격적인 나무심기에 앞서 일단 신발을 벗어두고 강에 들어갑니다.
“진정 강을 보려면 강을 직접 걸으며 느껴야한다”는 스님의 지론! 며칠 전 갑작스런 꽃샘추위로 쌀쌀한 날씨에 다들 물에 발을 담그는 순간 탄성이 나왔습니다.
내성천 맑은 물을 품은 모래는 백사장의 고운 모래가 아닌 강물 속에서 흘러 흘러 퇴적중인 모래는 곱기도 하지만 제법 알맹이가 있어서 덕분에 천연 지압마사지를 했습니다.
차가운 강물에 놀란 것도 잠시 강에 들어서자 더 크게 다가오는 강변의 변화였습니다. 왕 버들 나무가 잘려나간 강둑과 수몰될 높이만큼 나무가 잘려나가 속살을 훤히 드러낸 산을 병풍삼아 걸었습니다.
아직은 쌀쌀한 날씨와 나무심기 일정상 스님 텐트주변 강을 조금 거닐어 본 후 다시 올라와 나무심기에 돌입!
지율스님이 미리 영주 시장에서 준비하신 묘목과 모종들을 팀별로 배분해 심었습니다. 구절초와 쵸크베리 해당화 매발톱 등 야생에서도 잘 자랄 수 있는 것들로 고르신 스님.
청년들은 서툴지만 열심히 삽으로 땅도 파고 직접 물을 길어와 한그루 나무의 뿌리를 땅에 내렸습니다. 더 이상 스님텐트 주변이 허전하지 않게 다양한 꽃들도 심고, 꼭 3년 뒤에도 5년 뒤에도 무럭무럭 이 자리에서 자라나길 기대하면 심는 청년들.
어차피 물에 잠길 수몰지구에 왜 나무를 심지? 라는 물음이 들 수 생길 수 있습니다.
‘어차피..’.라는 생각에 잠기던 순간 스님은 우리에게 물었습니다.
수차례의 소송과 속전속결의 공사 진행, 거대 기업과의 재판과정 속에서 다시 내성천이 본연의 모습을 찾을 가능성을 흔히들 1% 아니 0.1%로 봅니다.
혼자 수차례 소송을 겪고 수없이 강을 다니고 있는 제가 생각하는 가능성은 어느 정도 일까요?
“90%에요. 막연한 상상의 희망이 아닙니다. 이 정도의 희망이 없다면 버틸 수 없죠.
영남의 젖줄 낙동강을 도보로 다섯 번을 왔다 갔다 다녀보니 그제야 비로소 강이 보였다는 스님.
스님의 희망은 ‘막연한 것 이 아닌 정말 현실적인 것일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강을 다니며 본 스님은 단지 모래톱과 물줄기를 본 것만은 아니겠지요.
물의 흐름이 막혀 강바닥이 드러나는 지금의 내성천이 다시 본연의 모습을 찾아 다음세대들이 누릴 아름다움을 보셨을 겁니다.
모래가 흐르는 강 내성천.
나무의 삶도 물의 삶도 잠기는 곳 그 속에 사는 노루, 삵, 수달, 강아지, 흰수마자의 삶, 수 백 년은 넘었을 마을의 역사, 누군가의 고향, 백로와 먹황새의 쉼터, 왕 버들나무 뿌리의 시간..
그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물론 세상 그 모든 건 변하고 사라지기 마련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 변화가 변화의 대상이 일으키는 순리의 것이 아니라면…..?
약 800억 원의 예산을 들여 내성천 정비 사업으로 보를 건설하고 제방을 쌓고 자전거 길을 만들고 생태공원을 조성하는 것이 과연 정말 누구를 위한 필요인지.
만약 철저하게 ‘인간’에 맞춰진 편의와 여가생활, 효율적인 물 사용을 위한 것이라면 저는 내성천을 감싸 안는 언덕을 수없이 뛰어다녔을 노루에게 한없이 부끄러워집니다.
물 부족과 홍수피해를 해결한다는 이유에 22조 원이 넘어가는 국가재정을 투입해도 주민들은 홍수피해를 더 걱정하고, 제방을 다시 쌓을 지도 모르는 우려가 생기고 있는 지금.
당장 내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 이라고 생각하는 어리석음은 피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역시나 이번에도 잠깐 이지만 내성천을 걸으면서 수달과 철새들의 흔적을 봤으니까요.
우리는 나무심기가 마무리되고 내성천 하류가 간직한 절경을 보기위해 회룡포 전망대에 올랐습니다. 시간이 어느덧 마무리할 시간에 다다르고 참가자들이 각 지역으로 다시 돌아가기 전 간단하게 나누기를 하고 차에 올랐습니다, 다들 내성천의 모습에 안타까워하며 대부분 정작 식목일에 나무를 심어 본 것은 처음이라며 뿌듯하다는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또, 반대를 위한 반대 입장이었던 4대강사업에 대해 오히려 객관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이 사안에 대해 공부해보고 싶다는 의견부터 이렇게 거대한 사업의 필요성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고 싶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어딘가에 내가심은 한 송이 꽃과 나무가 자라고 있다는 것 만 으로도
마음이 참 따뜻해지고 뿌듯해지는 하루였습니다.
비록 가까이서 보지도 갈 수도 없는 내성천이지만 작은 뿌리하나를 그곳에 내렸다는 것 자체가 나와 그곳이 연결된 느낌을 주는 것 같습니다.
이제 우리도 내성천을 향해 90%의 희망을 가져야겠습니다.
# 에코붓다 소식지 2014년 5-6월 호에 실린 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