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부처님의 빈그릇(2)

 

특집|부처님의 빈그릇

‘빈그릇운동의 전설이 한자리에 모이다!’

– 정토회 빈그릇운동의 시작과 결실, 그리고 새로운 여정

 

2004년 시작된 빈그릇운동은 당시 정토회 100일 결사의 실천과제였습니다, 이 운동은 정토 행자들의 뜨거운 열정과 노력으로 100만인 실천 서명운동을 끌어내는 등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언론에서는 불교시민단체가 제안한 실천 행동이 전 국민운동으로 퍼지기는 처음이라며 앞다투어 보도했습니다. 음식을 남기지 않는 소박한 실천을 통해 자연을 살리고 지구촌의 굶주린 이웃을 돕자는 마음으로 시작된 빈그릇운동은 정부와 지자체, 기업, 종교, 시민단체, 언론계 등의 폭넓은 참여를 끌어냈습니다. 이 운동에 앞장섰던 향음법사님과 향취법사님을 모시고 당시의 열정과 소회를 나누고, 앞으로 정토회 환경운동의 나아갈 바를 고민해보았습니다.

 

빈그릇운동은 어떤 계기로 시작되었나요?

윤태임(향음) : 사실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운동은 아니에요. 정토회에서는 정토회관을 중심으로 20여 년을 넘게 쓰레기 제로 운동을 해왔어요. 그러다 2005년 1월에 음식물쓰레기 직매립 금지법이 제정되었지요. 각 가정에서는 전용 봉투를 이용해 음식물쓰레기를 분리해 배출하고, 수거업체도 소각이나 퇴비화 과정 등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음식물쓰레기가 사회문제, 환경문제로 떠올랐어요. 당시 보살단 회의에서 빈그릇운동을 제안했는데, 스님이 “그럼 누가 할래?”하시길래 제가 손을 번쩍 들었지요.

이성미(향취) : 당시 저는 불교대 학생이었어요. 정토회의 빈그릇운동은 당시로써는 획기적인 발상이었어요. 쓰레기로 나오는 음식물 양이 어마어마하고, 그 처리비용만 15조 이상이라며 여기저기서 그 처리 방법에 대해서 논의할 때였어요. 그때 정토회에서는 ‘음식물쓰레기를 아예 만들지 말자!’라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했어요. 승가에서 해왔던 공양 운동을 현대화한 것이지요.


▲이성미 님이 빈그릇운동 포스터를 소개하고 있다.

음식물쓰레기 처리를 두고 우리 사회가 전전긍긍할 때 ‘처음부터 쓰레기를 만들지 말자’라는 국민적 깨달음을 주신 셈이네요. 그래도 생활습관을 바꾸자는 운동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윤태임 : 저희가 빈그릇운동을 하기로 마음먹고는 모두 모여 3천 배를 했어요. 그리고 먼저 정토회관 공양간에서 나오는 음식물쓰레기 양을 날마다 점검했어요. 이건 왜 버려졌을까, 버리지 않고 되살리는 방법은 없을까. 그러면서 어디까지 먹을 수 있나 자신을 두고 실험도 했어요. 호박 꼭지, 수박 껍질을 먹어보기도 하고, 감자 껍질, 양파 껍질을 얇게 다져서 전도 부치고, 장아찌를 담그기도 했어요. 생쓰레기를 모아 옥상에 텃밭 만들어서 퇴비화하는 작업도 했어요. 그러면서 빈그릇 운동의 내용을 채워나갔어요.

이성미 : 일종의 과학적 검토를 진행한 셈이에요. 껍질째 먹어도 되는 채소들, 껍질째 먹으면 더 좋은 과일들의 목록을 분류하며 어떻게 하면 환경과 건강에 이롭게 조리할 수 있을까 등을 고민했어요. 그러면서 시민들에게 공원 등지에서 음식물쓰레기 안 남기는 조리법을 보여주기도 하고, 요리 대회도 열었어요. 나중에는 생쓰레기 퇴비화 운동까지 연결되었어요. 땅에서 난 것은 땅에서 돌려준다는 의미였지요. 한 아파트 부녀회를 설득해서 마른 쓰레기와 소금간이 안 된 음식물쓰레기를 말리도록 했어요. 그걸 모아서 강화도의 한 농장에 가져갔어요. 또 서울 양천구청을 설득해 퇴비장도 만들었지요.

윤태임 : 향취법사님께서는 양천구에 있는 주민센터 가운데 안 다녀보신 곳이 없을 거예요. 그때 교통사고도 나셨을 때였는데 반깁스하시고 주민센터는 물론이고, 각급 학교, 아파트 부녀회까지 일일이 다 찾아다니셨어요. 그 덕택에 양천구에서는 주민 94%가 빈그릇 실천 서약을 했어요.


▲빈그릇운동 당시 만들었던 안내 책자를 들고 설명하는 윤태임님

이성미 : 그때는 모두 그렇게 신나서 했어요. 향음법사님은 판매원으로 오해도 받으셨어요. 빈그릇운동에 대한 홍보자료가 담긴 포트폴리오를 갖고 다녔는데, 한 학교 교무실에서 선생님들이 향음법사님을 보시고 대뜸 “우리 빈그릇 안 사요!”하셨어요. 약속도 안 하고 관내 지도 보고 동그라미 치면서 이곳저곳 무작정 찾아다녔을 때였지요.

윤태임 : 그래도 빈그릇운동의 취지에 관해 설명하면 모두 반가워하셨어요. 학교에서도 적극적으로 협조해주셔서 아이들도 빈그릇 실천서명을 했어요. 급식 때 학생들이 다 먹고 깨끗한 그릇 보여주면 요구르트 한 개씩 주기도 했고요. 파리바게뜨 같은 기업체에서는 회사 식당에서 잔반 줄이기 위해 여러 활동을 했어요. 천주교나 기독교 같은 다른 종교에서도 적극적으로 참여했고요, 정토회 공양간에 견학도 오고, 발우공양 체험을 하러 오는 단체도 있었지요.


빈그릇 운동이 전법 활동으로 이어진 셈이네요. 법륜스님도 기뻐하셨겠어요.

윤태임 : 빈그릇운동은 단순한 서명운동에 머물지 않았어요. 비움과 나눔의 운동이었지요. 음식물을 남기지 않겠다는 실천 서약을 하고, 1천 원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하도록 했어요. 용산국립박물관 개원할 때 그 앞에서도 서명운동을 했는데, 한 아이가 엄마 소맷자락을 이끌며 “엄마, 나도 학교에서 했어. 엄마도 얼른 해!”라고 말할 때, 아, 우리가 정말 열심히 했구나 싶었지요. 그런데 50만 명쯤에서 주춤했어요. 좀처럼 서명하는 분들이 늘지를 않더라고요. 스님도 그동안 애쓴 것을 아시니까 “그동안 고생했다. 그만해도 된다.”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때 우리가 손사래를 쳤어요. “스님, 우리 끝까지 해내겠습니다.” 그러고 나니 70만, 80만 쑥쑥 올라가서 150만 명까지 갔어요.


▲2007년 4월 지구의 날을 맞이해 ‘빈그릇운동’ 거리 캠페인에 나선 아이들

이성미 : 빈그릇운동은 단순한 환경운동도 아니었지요. 지구 한쪽에서는 굶어 죽어가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음식물이 쓰레기가 되어간다는 말도 안 되는 현실을 바꾸기 위한 실천이었어요. 잘 사는 나라들이 식량을 마구 사들이면 가격이 올라 제 3세계에서는 제 자식 입에 넣을 한 끼도 구하기 힘들어져요.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식량 자급률이 40% 정도이고, 나머지를 모두 수입하고 있어요. 음식물쓰레기는 우리가 먹고 남기는 음식들뿐만 아니라 먹지도 않고 버려지는 음식들까지 포함돼요. 결국, 자신의 욕구를 자제하지 못하는 바람에 환경과 이웃, 건강을 해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내가 남기면 다른 사람은 먹지 못한다.’라는 것이네요. 나와 남을 분리해서는 안 된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빈그릇운동의 출발점임을 알게 됩니다.

이성미 : 빈그릇운동은 종교, 철학, 환경, 복지, 나눔의 여러 가지 측면에서 생각할 수 있어요. 그래서 먹는 것 하나에도 만물이 다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내가 밥 한 그릇 안 남기는 게 이렇게 큰 의미가 있구나!’라고 자각해야지요. 부처님께서는 적게 먹고, 적게 쓰고, 적게 입으라고 하셨어요. 빈그릇운동은 부처님의 ‘적게 먹으라’라는 말씀에 귀 기울였어요. 365일 하루 세끼 먹는 것에서부터 내 욕구를 알아차리고 자각이 되면, 적게 쓰고 적게 입는 것도 자연스레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빈그릇운동은 결국 순간순간 일어나는 내 욕구를 자제하고, 일상에서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었지요.

윤태임 : 내 삶이 바뀌어야 가능한 실천이고, 또 내 삶이 바뀌는 수행입니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이벤트가 되면 안 돼요. 지금도 저는 회사에서 직원들과 식사를 할 때 먹고 싶은 것을 주문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남기지 않고 먹을 수 있는 것을 시켜요. 만둣국을 시킬 때도 “국물은 조금만 주세요!” 합니다. 국물도 남기면 안 되니까요 짜장면을 시켜 먹을 때도 남은 소스는 통에 담고 단무지로 닦아내 먹습니다. 그 모습을 직원들이 고스란히 지켜봅니다. 같이 실천하는 사람도 있고, 더러는 ‘뭐 저렇게까지….’하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하지만 상관없습니다. 나와의 약속이니까요. 한 생을 깔끔하게 후손들에게 폐가 안 되게 살겠다는.


▲ ‘빈그릇 운동’은 각계 유명인사들의 실천 서약으로 이어졌다. 소설가 김홍신 씨와 법륜스님의 서약문

이성미 : 당시 정토 행자들이 모두 마음을 모았지요. 길주원 보살님은 식당을 운영하며 음식을 남기지 않으면 500원을 되돌려주시고, 최광수 향상법사님은 당시 재직중이던 경상대 학생들과 함께 빈그릇 프로젝트를 진행하셨고, 현희련 국장님, 다행법사님, 방주원 보살님, 지렁이 엄마 김월금 법사님 등등 정말 멋지고 신나게 했지요. 오늘 이 자리를 준비하며, 무엇이 그런 열정을 만들었을까 생각해봤어요. 아마도 아이들에게 오염된 세상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네요. 엄마로서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걱정되었으니까요. 나중에 “엄마, 그때 뭐 했어요?”라고 물어볼 때, “나는 그래도 이만한 노력이라도 했다”라고 말해야 덜 미안할 것 같았거든요. 그때 어렸던 아이들이 지금은 생태, 환경, 공동체에 관심을 두고 일하고 있어요. 내가 하는 일이 세상을 바꾼다는 믿음, 꾸준한 믿음과 실천이 소중하다는 생각이네요.

윤태임 : 우리가 설마 했던, 마스크 쓰는 시대가 되었어요. 그때 내가 좀 더 열심히 해야 했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하지만 빈그릇운동은 제가 학생운동, 노동운동하며 권력 집단에 대항해 느꼈던 무력감을 씻어줄 수 있는 꼭짓점이 되었지요. 저는 빈그릇운동하면서 제 삶이 많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집 앞 동네 어귀에서 빗자루질하니까 남편이 “지구 한 편을 쓸고 계시네”해요. 내가 하는 실천이 작은 것 같지만, 그 작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적게 먹고 적게 입는 것이 모여 보다 살만한 지구를 만들게 되지요. 이렇게 살면, 이렇게 사는 것이 또 길이 됩니다.

두 법사님은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이면 다만 할 뿐’이라고 하셨지요. 2004년에서 2005년까지 150만 명이 참여한 빈그릇운동은 1억 2천만 원의 기부금이 모였습니다.
이 돈은 밥퍼 나눔본부와 노숙자 쉼터, JTS 등에 기부되어 어려운 이웃들의 빈그릇을 채우는 데 쓰였습니다. 이후 빈그릇 운동은 서울시에서 인계해 진행되었습니다.

 

*에코붓다 소식지 2021년 11·12월호에 실린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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