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생명의 흙(2)
특집|생명의 흙
‘오래함’과 ‘함께함’, 두 도반을 소개합니다
남경희 |강경지부(정토회 제3기 흙퇴비화 실험단)
분명 만지기도 싫은 음식물 쓰레기였는데, 흙에 묻어주니 새 생명이 되었다. 열흘 정도 지나니 포실한 흙으로 그 모양을 바꾸었는데, 만질 때면 편안한 느낌마저 들었다. 신비했다. 우리 집 거실 한쪽을 차지한 두 개의 흙 퇴비함들, 내 오랜 게으른 습관을 고치고 환경 사랑까지 단번에 일깨워준 소중한 도반이다.
게으름이 충만한 나는 늘 음식물 쓰레기가 나오면 바로바로 버리지 못했다. 며칠을 묵혔다 버리다 보니 냄새가 많이 나서 버리려고 엘리베이터를 탈 때면 눈치가 보이고 창피했다. 또 이 음식물 쓰레기가 어떻게 처리될까 걱정도 되고 왠지 죄스러운 마음이었다. 그러던 차에 흙퇴비화 실험단 모집을 한다기에 용기를 내어 도전했다.
정토회에서 흙과 효소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며 퇴비함을 준비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 들고 다니던 대용량 아이스박스가 창고 안에서 20년 만에 밖으로 나와서 빛을 보게 되었다. 크고, 뚜껑도 있고, 보온도 잘 되고, 무엇보다 어디에 두어도 보기 나쁘지 않아 안성맞춤이었다.
드디어 흙과 효소가 도착. 먼저 아이스박스에 보송보송한 배양토를 옮겨 담았다. 다음에 사과껍질, 버섯 꽁지를 잘게 썰어 효소에 버무려, 하루 정도 실온에 두었다가 퇴비함 한쪽 구석에 묻었다. 그리고는 흙과 잘 섞은 뒤 음식물이 보이지 않게 흙으로 잘 덮어 주었고, 이틀에 한 번 정도 자리를 옮겨 주었다. 퇴비함에 넣은 것들은 대부분 과일 껍질과 채소를 손질하고 남은 것들이었다. 양은 대략 한 번에 국대접으로 수북하게 한 그릇 정도.
무엇을 하면 자기 성격이 나오듯이 성질 급한 나는 이것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서 거의 매일 아침저녁으로 퇴비함을 열어 보고 흙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뒤적여보았다. 새로운 음식쓰레기를 매일 묻어주고, 먼저 묻어준 것은 산소를 공급하기 위해 섞어 주고 비벼주었다. 그러자 조금씩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5일 정도 지나니 상춧잎과 버섯 꽁지들이 냄새도 안 내고, 맨손으로 뒤적거리고 비벼주어도 거부감이 없는 형태로 변해갔다. 열흘이 지나니 포실포실한 흙으로 돌아왔다. 분명 만지기도 싫은 쓰레기였는데, 이렇게 새로운 생명이 된 것이다. 부식이 잘 된 포실한 흙들은 만질 때면 기분이 좋아졌다.
한 달이 지나 11월이 되니 날이 쌀쌀해졌다. 베란다에 두었던 퇴비함을 거실 창 앞에 떡하니 갖다 놓았다. 안에 들여놓으니 뚜껑을 열 때마다 물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교육 시간에 습기가 많아지는 것은 부식이 잘 되는 증거라는 말을 듣고는 ‘다행이다!’라고 안심했다.
거실에 있으니 들여다보기에는 좋았으나, “냄새가 나면 어떻게 하냐?” 혹은 “날파리가 생길 것이다!” 등 걱정을 앞세운 가족들의 반대가 심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퇴비함을 신기하게 여겼다. 퇴비함을 수시로 들여다보는 나에게, 남편은 자기 얼굴 보는 시간보다 흙 들여다보는 시간이 더 많을 것이라며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우리 집에 들어오면 화분 하나 살아남기가 힘들고, 뭔가를 키우는데 소질이 없는 내가 이렇게 흙에 정성을 들이니 가족들도 신기한 모양이었다. 비싼 음식물처리기가 필요 없겠다는 생각으로 재미를 붙이고 있던 차에 비상사태 발생했다. 퇴비함 두 개 가운데 하나에 알인지 벌레인지 알 수 없는 하얀 것들이 눈에 띈 것이다.
“악, 움직인다, 벌레 아니야?!!”
순간 여러 생각이 들었다. 역시 집에서 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지금에라도 가져다 버려야 하는 것은 아닐까…. 늘 그랬듯이 조금이라도 어려움이 닥치면 물러서려는 습관이 작동하고 있었다. 그러다 언뜻 보왕삼매론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일을 꾀하되 쉽게 되기를 바라지 마라. 여러 겹을 겪어서 일을 성취하라.’
어떤 일이든 고비가 있게 마련인데, 그때마다 도망치려는 마음을 이번에는 바꾸고 싶었다. 잘 해결하고 좋은 경험치로 남겨보자 마음먹으니 조금은 의연해졌고, 함께 흙퇴비화 실험에 나선 정토회 도반들의 경험과 조언을 듣고, 연구하며 해결책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흙퇴비화를 하면서 가장 달라진 것은 첫째, 집 밖으로 나가는 음식물쓰레기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조리된 음식을 되도록 다 먹고, 조리 전에 생기는 생쓰레기는 퇴비함으로 간다. 두 번째는 밥상이 소박해졌다.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껍질째 먹고, 조리하는 가짓수도 줄였다. 세 번째는 환경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다. 대충하던 쓰레기 분리수거도 철저히 하고, 설거지할 때도 합성세제 대신 밀가루나 효소 등을 이용해 천연수세미를 쓴다. 물건을 살 때도 심사숙고하고 결국에는 사지 않는 경우가 늘었다. 그리고 한 번 결심한 것은 성큼 실천에 나서게 됐다. 늘 ‘해야지, 해야지…’ 생각만 하던 습관에서 벗어나 행동하는 내가 되었다.
나의 퇴비함의 이름은 ‘오래함’과 ‘같이함’이다. 오래 같이하자는 의미로 지은 이름이다. 이들과 함께 처음 마음 변치 않고 의연하게, 흙퇴비 실험을 계속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