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파뿌리, 버섯 자루받이의 재발견…이것도 음식

방송날짜: 2008.06.11

파뿌리, 버섯 자루받이의 재발견…이것도 음식
[쓰레기 이동을 막아라-음식쓰레기①] 35년차 주부 김월금씨가 말하는 지렁이의 지혜
박유미 (ansi204) 기자

오마이뉴스는 올 한 해 동안 연중기획으로 ‘쓰레기와 에너지’를 다룹니다. 지난 5월에 ‘친환경 결혼’을 주제로 쓰레기 문제를 다뤘고, 6-8월은 ‘쓰레기 이동을 막아라’는 주제를 통해 쓰레기 감량과 재활용 없이는 결국 쓰레기 절대치가 변함이 없다는 점을 확인할 계획입니다. 이번엔 음식쓰레기를 거의 만들지 않는 곳과 일반 가정을 비교하면서 우리 삶 속에서 어떻게 음식쓰레기가 만들어지는지 살펴봅니다. <편집자주>

수도권 지하철 3호선 지축역에서 내려 마을버스 5-2번을 타면 소박한 가게들과 좁은 도로, 촌스럽게 보일 법한 간판들이 드문드문 보이고 푸른 나무들이 바람결에 살랑인다. 기자가 버스에서 내려 낯선 풍경에 멍해있던 찰나, 그 동네를 닮은 듯 수수한 모습의 김월금(61)씨가 내게 다가와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어떻게 저인지 한 번에 아셨어요?
“왠지 기자 같아서, 하하하. 일단 장부터 봅시다.”
 
일요일(8일) 오전 11시 반, 친환경 음식문화를 몸소 실천하시는 김월금씨와의 만남은 장바구니를 한 손에 든 소박한 김씨의 인사로 시작했다.

 

▲ 두부 사는 중 두부는 미리 준비해간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 구입했다.
ⓒ 박유미  두부

종잇조각에 구입목록을 적어온 김씨는 할인마트로 들어서면서 작은 한숨을 쉬었다. 그는 플라스틱 상자와 비닐봉지에 싸여있는 상품들을 보며 “요즘은 포장 안 된 게 거의 없다”고 말했다. 포장이 안 되어 쌓여있는 채소류 옆에도 포장을 위한 비닐봉지가 마련되어 있다.

김 씨는 장바구니에서 투명망을 꺼내 필요한 만큼만 감자를 담았다. 오이는 못생긴 것들로 몇 개를 골라 옆에 있는 비닐봉투 대신 방수망에 넣고, 두부는 조심스럽게 플라스틱 용기에 담았다.

“비닐봉투에 안 담으니까 이상하게 생각하는 가게도 많아요. 그래도 이렇게 해야지. 이렇게 하면 내가 필요한 양만 딱 사니까 싸다고 많이 충동 구매하는 일도 없어요.”

  

▲ 계산대에 올려진 망들 비닐봉지 대신 망을 사용해 물건을 담았다.
ⓒ 박유미  비닐봉지

망에 쌓인 물건들을 장바구니에 넣어 서로 한 쪽씩 나눠들고 김씨의 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잠시 숨을 돌리며 냉장고를 구경하니 작은 용기가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다. “그건 파뿌리인데 멸치국물 비린내 없애고, 이건 버섯 자루받이인데 국물 낼 때 쓰고” 쓰레기라고 여겨 잘라내 버렸을 부분들이 소중한 음식 재료가 된다.

이날 점심 메뉴인 된장찌개를 위해 감자, 양파, 애호박, 고추가 개수대 안에 모였다. 김씨는 채소들이 담긴 대야에 물을 적당히 채우고 농약성분을 없앤다는 ‘미생물 발효 활성액’을 조금 부어 채소들을 문질렀다. 새 물이 담긴 바가지에서 한 번씩 더 행궈주는 것으로 세척은 끝났다.

껍질도 따로 깎지 않고 철수세미로 흙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충분했다. 음식물 쓰레기도 최소한이었다.

“고추는 꼭지까지 다 찌개에 넣고, 애호박 꼭지는 다져서 써요.”

물을 세게 틀어 박박 닦아내고 칼로 껍질을 도려내기에 바쁜 풍경과는 거리가 멀었다.

보글보글 맛있는 소리가 들리는 된장찌개는 작은 뚝배기에 먹을 만큼만 알맞게 끓여졌다. 현재 식구가 부부뿐이라 음식을 많이 하지 않는다는 김 씨는 “남으면 냉장고에 들어가고 쓰레기가 된다”고 말했다.

드디어 작은 식탁 위에 오늘의 만찬이 펼쳐졌다. 소박하게 담긴 반찬들이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아 정갈한 맛을 낸다. 된장찌개를 한 술 떠 맛보니 평소 쓰지 않는 부분들까지 넣은 재료들이 제 맛을 내는 듯하다.

▲ 냉동실 풍경 버리기 쉬운 파뿌리, 버섯 끄트머리 등이 오밀조밀 보관돼 있다.
ⓒ 박유미  파뿌리


▲ 정토회 옥상에서 기른 무를 들고 있는 김월금씨.
ⓒ 정토회  김월금

– 이렇게 맛있는 점심 주셔서 감사합니다! 취재하다 밥 얻어먹다니 영광이에요.

“내 집 왔으면 밥 먹고 가야지. 차린 게 없어서 그렇네.”

– 푸짐하게 먹고 있는 걸요. 가족들도 맛있게 먹죠?

“맨 처음에는 질긴 껍질 같은 게 들어가니까 싫어하다가 이젠 적응돼서 다 잘 먹어요.”

– 선생님은 언제부터 쓰레기 줄이기를 실천하셨어요?

“16년 전부터 정토회 활동을 했는데, 거기서 하는 ‘에코붓다’라는 환경운동을 통해 이런 실천을 시작했어요. 에코붓다는 정토회 내부 쓰레기 문제에서 시작해서 ‘빈 그릇 운동’이라는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 운동까지 왔죠.

– 이렇게 실천하기가 번거롭지는 않으세요?

“습관이 되면 오히려 물 콸콸 틀어놓고 껍질 버리고 하는 게 더 불편해요. 우리 남편도 처음엔 귀찮아하더니 지금은 슈퍼 가서 비닐봉투 안 들고 와요.”

– 쓰레기 줄이기 시작하시고 어떤 점이 가장 많이 달라지셨어요?

“소비를 적게 하니까 욕구가 사라져요. 맛있게 먹겠다는 욕구가 줄어드니까 돈이 좀 없어도 불편하지 않고. 먹고 싶은 대로 다 해 먹는 무절제한 생활에서 벗어났죠.”

– 쓰레기 발생이 단순히 쓰레기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그 사람의 쓰레기를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어요. 지금 누군가는 굶어죽고 누군가는 버리고 있잖아요. 스스로 선택하는 작은 불편으로 모두 행복해지면 얼마나 좋겠어요.”

– 저처럼 초보들은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음식 할 때 양을 적게 하는 게 가장 중요하죠. 모임에 가서도 음식을 쓸 데 없이 많이 시키지 말고. 아파트는 버리기가 너무 쉽게 돼 있어서 문제인 것 같아요.”

수다가 끝나고, 그릇들이 설거지 준비에 들어갔다. 채소를 씻을 때와 마찬가지로 대야에 물을 받아 아크릴 수세미로 씻고 바가지에 담긴 물로 헹구니 물이 조금 밖에 들지 않았다. 알뜰한 습관 덕에 김씨 집의 수도세가 많이 줄었음은 물론이다.

  

▲ 설거지하는 중 대야에 물을 받아놓고 설거지하면 물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
ⓒ 박유미  설거지

김씨가 후식으로 준비한 참외는 껍질을 깎지 않은 상태였다. 참외를 안 깎고 그냥 먹어보기는 처음이었다. 깨끗이 닦았지만 불편하면 껍질을 깎아 주겠다는 말에 손사래를 치고 한 입 베어 물었다. 생각보다 맛있어서 한 개를 통째로 다 먹고 말았다.

아무리 줄이려고 해도 약간의 음식물 쓰레기가 발생한다. 이 쓰레기는 베란다에 살고 있는 지렁이의 담당이다. 지렁이가 음식물 쓰레기를 먹고 분변토를 배설하면 이는 화분으로 옮겨져 훌륭한 거름이 된다.

“지렁이를 키우다 보면 생명의 순환을 배우게 됩니다. 지렁이가 먹을 수 있는 만큼만 내가 내놓아야 하니까요.”

▲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는 지렁이 지렁이가 배설하는 분변토는 훌륭한 거름이다.
ⓒ 박유미  지렁이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에 심혈을 기울였을 때는 지렁이가 굶어죽지 않을까 걱정한 적도 있다며 김씨는 웃었다. 꼬물꼬물 움직이는 지렁이가 지구생태계를 함께 하는 소중한 이웃처럼 느껴졌다.

취재를 마치고 나설 차비를 하는 김씨의 가방에는 꽁꽁 쌓인 망과 스테인레스 컵이 들어있었다. 언제나 들고 다니면서 비닐봉지 하나, 종이컵 하나라도 줄이려는 그의 노력이 엿보였다. 나는 도대체 언제쯤 이런 습관을 배울 수 있을까. 오늘부터 밥 먹을 때마다 이 음식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생각해봐야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언론재단 기획취재 지원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이뤄졌습니다.

2008.06.11 15:12 ⓒ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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