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 닦아 먹는 것도 ‘나눔’이죠” (경향신문)
방송날짜: 2005.12.27 23:22:05
“어머니가 살아계셨다면 어안이 벙벙하셨을 거예요. 당연한 일에 무슨 운동이며 캠페인을 하느냐면서 버럭 화를 내셨을 것입니다. 어릴 적 너무 가난했던 탓인지 본능적으로 음식을 못 버렸죠. 그랬던 저도 어느 새 슬슬 음식을 버리기 시작했습니다. 먹을 게 넘쳐나다 보니 버리지 않을 재간이 없더라고요.”
전국 군부대와 초·중·고등학교를 누비며 배고픔을 모르고 자랐을 새파란 젊은이들 앞에서 “밥그릇 닦아 먹읍시다”라며 외치는 오정숙씨(50). 그는 에코붓다에서 주도하는 ‘음식 남기지 않기 100만인 캠페인’ 강사로 자원해 전국을 누비며 ‘밥그릇 닦아 먹기’ 운동을 전파하는 전문강사다.
-학교·군부대등 전국 누비며 강연-
오씨는 “날마다 전세계에서 5살 미만의 어린이 3만명이 먹을 것이 없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음식을 남기지 않겠다’는 소박한 약속으로 지구 저편에 사는 굶주린 이웃과 나눔을 실현할 수 있는 것이지요”라면서 호소하고 있다. 그는 우리 주변 어두운 곳, 아프리카·인도·동남아시아 등에서는 아직도 배 곯는 아이들이 넘쳐난다고 말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의 눈앞에는 굶주리는 사람들이 없었다. 그런데 몇 달 전 그는 인도에 여행갔다가 ‘불가촉 천민(不可觸 賤民)’들이 하수구에 손을 넣어 버려진 음식 찌꺼기를 걸러먹는 충격적 장면을 보았다. 배고픔을 해결하려는 이들의 처절한 모습을 본 그는 한동안 잊고 살았던 과거의 뼈아픈 기억을 떠올렸다.
겨울 부뚜막 아궁이 옆 한쪽 귀퉁이에서 얻은 밥을 먹여주는 어머니의 기억이, 며칠씩 밥을 먹지 못해 일어나지 못했던 기억이, 그러면서 기꺼이 먹던 음식을 나누어주던 따뜻했던 사람들의 기억이. 그는 그 고마움을 세상에 돌려줘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빈 그릇 운동을 하면서 어느 순간 내 안에 숨어 있던 어두움이 걷히고 살아가는 데 자신이 생겼습니다. 또 빈 그릇 운동은 사람뿐 아니라 자연의 모든 생명까지도 살릴 수 있는, 그래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씨는 초등학교를 마치지 못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밥그릇을 닦아 먹으면 굶주려 죽는 아이를 살릴 수 있다” 또는 “남기는 음식을 그 아이들과 나눌 수만 있다면 그들을 살릴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그는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빈그릇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불교 수행공동체인 정토회 부설 환경교육단체 에코붓다가 지난해 9월 ‘빈그릇 운동’을 시작했다. 지난 20일쯤 이에 동참하기로 한 서약자는 1백만명을 넘어섰다. ‘1백만명’이라는 숫자는 지금까지 시민운동에서 이뤄진 여러 서명운동에서 유례를 찾기 어렵다고 한다. 빈그릇 운동은 ‘음식을 먹을 만큼만 만들어 남기지 말자’는 운동이다. 정토회원 1,000명이 이 운동 동참을 서약하면서 시작됐다. 환경보호와 자원절약을 실천하고, 그렇게 아낀 자원을 지구촌의 어려운 이웃과 나누자는 취지다.
서울지역 1,700여 개 초·중·고등학교의 18%에 해당하는 400여 개 학교가 동참했다. 전방의 한 군부대는 오씨 등의 호소로 버려지는 음식량을 65.6%나 줄였고, 간부들의 밥그릇 약속 서약금(개인당 1,000원)과 음식을 남긴 사람들이 낸 작은 벌금(150원)을 모아 인도의 굶는 어린이를 돕는 선행을 베풀기도 했다.
오씨는 “빈그릇 운동을 전개하면서 장병들의 ‘환경과 나눔’에 대한 의식이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1일 논산훈련소 3,000여명의 젊은 훈련병 앞에서 자신의 굶주린 유년기를 풀어냈다. 강연에 대한 반응이 좋아 그는 또다시 초청을 받았고, 25일 논산훈련소에서 ‘앙코르’ 강연을 한다.
-“쓰레기줄고 기아해결 한몫”-
“우리나라에서 해마다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를 돈으로 환산하면 15조원어치라는군요. 그 절반이 먹다 남긴 음식이라죠. 바꿔 말하면 먹을 수 있는 거란 얘기죠.”
남겨 버려진 음식물의 처리비용만도 4천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이는 지하철 노선 7개를 추가로 건설할 수 있는 막대한 액수이며, 서울 상암동축구장을 70개 이상 지을 수 있는 돈이다. 경제적인 계산은 차치하고라도 음식물 쓰레기는 환경오염의 주범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기피대상 1호’이다.
음식물 쓰레기를 매립하면 다량의 침출수가 흘러나와 지하수를 오염시키고, 소각할 경우에는 다이옥신 등 유해물질이 배출되기 때문이다. 골치아픈 음식물 찌꺼기는 이를 처리하는 부지 선정 등을 둘러싸고 지자체 간의 갈등요인이 되고 있기도 하다.
불러주는 곳이면 전국 어디든 달려가 강연하겠다는 그는 “먹을 만큼 만들어 남기지 않고 먹는 작은 실천이 지구의 환경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환경운동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지요. 1백만명이 넘었다고 멈출 수 있는 운동도 아닙니다. 이 세상에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것처럼 음식을 먹고 나면 빈 그릇만 남깁시다.”
〈글 김윤숙·사진 권호욱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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