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 느림·비움‘웰빙 식단’ 정성과 영양이 한가득

방송날짜: 2007.5.23





느림·비움‘웰빙 식단’ 정성과 영양이 한가득








건강식으로 주목받는 ‘사찰음식’의 맛과 지혜








정희정기자 [email protected]








웰빙 바람과 함께 사찰음식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 사찰음식 전문식당엔 손님들이 북적이고 직접 조리법을 배우는 이들도 늘었다. 동물성 재료는 물론 자극적인 양념을 철저히 배제한 사찰음식은 이제 특정 종교의 음식이 아니라 만인의 건강식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불교계 일각에선 사찰의 음식문화에 대한 관심이 건강식이라는 측면에만 집중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불교에선 식사 자체를 중요한 수행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내 건강만 챙기는 이기적인 생각을 벗지 않는다면 사찰음식에 대한 선호는 어쩌면 ‘편식’과 다를 바 없을지 모른다. 뜻있는 불교계 인사들은 생명의 근원이 되는 음식을 고마운 마음으로 소식하는 습관, 먹을 만큼만 덜어 먹고 설거지할 필요 없이 깨끗이 비우는 ‘발우공양’의 정신까지 함께 전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인기 끄는 사찰음식
지난 1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 위치한 사찰음식전문 뷔페식당 ‘아승지’는 점심식사 손님 70여명으로 꽉 차 빈 자리가 없었다.

사찰음식은 파·마늘·달래·부추·흥거(무릇) 등 다섯가지 매운 맛의 채소 ‘오신채(五辛菜)’를 쓰지 않는 게 원칙이지만 사찰음식점들은 대부분 대중의 입맛을 배려해 오신채를 써서 조리한다. 그러나 이곳은 조계종 산하 고덕사에서 운영하며 스님이 직접 요리를 담당하므로 오신채를 넣지 않은 사찰음식을 맛볼 수 있다.

새콤한 인삼당귀무침, 마·연근 샐러드, 더덕과 고구마, 샐러리, 잣 등을 섞어 고소하게 무친 잣더덕생채 등 상큼한 야채요리를 비롯해 30여가지 다양한 요리가 풍성했다.

우엉을 바삭하게 튀겨낸 뒤 매실진액으로 단맛을 낸 소스를 바르고 건과류를 뿌려 완성한 우엉전병, 고기 대신 버섯 등을 튀겨 탕수육 소스에 버무린 탕수 요리에도 자꾸만 손이 갔다.

친구들과 외식하러 왔다는 주부 전금녀(42)씨는 “기독교 신자지만 사찰음식이 담백해서 마음에 들어 자주 찾게 된다”며 “아이들에게도 이곳에서 맛본 음식을 흉내내서 만들어주는데 너무 좋아한다”면서 웃었다.

‘아승지’를 운영하는 지호 스님은 “5년 전에 문을 열었을 때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갈수록 찾는 이가 늘어 예약을 하지 않으면 자리가 없을 정도”라며 “돌잔치 등 행사 음식으로 주문하는 경우도 많아졌다“고 말했다.

사찰음식의 특징
사찰음식의 특징은 제철 재료와 천연 조미료를 사용하며 자극적인 양념은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또한 다양한 조리법이 발달돼 있고 장아찌 등 보관성이 좋은 염장 음식이 많다는 점 등이다.

사찰음식연구소 홍승 스님은 “육류나 어패류는 노린내나 비린내 등 나쁜 냄새가 강해 마늘과 파 등 오신채를 양념으로 쓸 필요가 있겠지만 채소 요리에는 오신채가 필요 없다”며 “각각의 채소가 가진 특유의 향기를 잃지 않도록 오신채를 쓰지 않는 것이 좋다”고 권했다.

또 “사찰음식의 장점은 조리시간이 짧고 그만큼 영양 파괴가 적어 바쁜 현대인들에게도 적당하다”며 “자연이 주는 좋은 선물인 제철 재료로 만든 음식이 건강에도 좋다”고 덧붙였다.

직접 사찰음식 요리에 도전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사찰음식 연구·보급활동을 펼쳐온 사찰음식연구회가 지난해부터 개설한 1년 과정 전문강좌 수강생만 해도 벌써 200여명이 넘었다. 최근 들어 수강생이 더 늘어 현재 수강생만도 60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불교계는 이러한 뜨거운 관심에 발맞춰 최근 조계종 산하에 ‘전통사찰음식문화보존회’를 출범시켰고 불교음식문화 관련 경전적 근거 수집과 연구활동, 표준 조리법 정리, 전문가 양성교육, 대중화 사업 등을 펼칠 계획이다.

발우공양 VS 뷔페
“한방울의 물에도 천지의 은혜가 깃들어 있고, 한톨의 곡식에도 만민의 노고가 스며 있으며, 한올의 실타래에도 베 짜는 이의 피땀이 서려 있다. 이 물을 마시고 이 음식을 먹고 이 옷을 입고 부지런히 수행 정진하여 괴로움이 없는 사람, 자유로운 사람이 되어 일체중생의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스님들이 발우공양을 하면서 외우는 ‘소심경’의 핵심 내용이다. 발우공양은 먹을 만큼 덜어먹고 숭늉과 김치조각으로 그릇까지 깨끗이 닦아 먹는 스님들의 전통식사법. 불가에선 예를 갖춰 법복을 세 번 입는데, 법문을 듣거나 말할 때, 예불 시간, 그리고 발우공양할 때다. 그만큼 먹는 일에도 큰 의미를 부여한 것이며 음식에 대한 공경과 중생에 대한 보은을 되새기며 식사를 한다. 사찰음식 전문가들은 “발우공양은 뷔페의 원조격”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불교환경단체 ‘에코붓다’는 발우공양을 현대화한 환경실천법을 ‘빈그릇 운동’을 통해 지난 2004년부터 대중적으로 전파하고 있다. 음식쓰레기 문제가 중요한 환경 이슈로 부각되면서 남김 없이 먹어 음식쓰레기를 줄이자는 환경운동에 대한 호응도 크다. 빈그릇 운동 실천을 약속하고 성금을 낸 이들이 160만명에 이르고 1000여곳이 넘는 학교와 군부대, 직장, 지자체에도 이 운동이 전파됐다.

백혜은 에코붓다 사무국장은 “발우공양은 적당량을 덜어 남김없이 먹고 뷔페의 원래 취지도 버리는 음식이 생기지 않도록 취향과 양에 맞춰 자율적으로 가져다 먹으라는 의미”라며 “그러나 요즘 뷔페는 다양한 음식을 많이 먹는 것으로 인식되고 오히려 음식 쓰레기만 더 만드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정희정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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