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례] ‘값 턱’ 낮춘 <문턱 없는 밥집> 유기농 ‘한턱’

방송날짜: 2007.7.17
‘값 턱’ 낮춘 <문턱 없는 밥집> 유기농 ‘한턱’
원가 5천원 비빔밥 형편껏 돈 내시고 누구나
나머지조림 꼬다리전 별미…나누고 함께하고

9일 서울 서교동에 특별한 식당이 문을 열었다. 5월15일부터 두 달 가까운 시험 운영 기간을 거쳐 정식 영업을 시작한 식당 이름은 ‘문턱없는밥집’. 이름부터가 남다르다.

운영은 더더욱 다르다. 이 ‘밥집’은 유기농식당이다. 홍어나 황태처럼 구하기 힘들거나 값이 무척 비싼 몇 가지 수산물을 빼고는 모두 우리나라에서 생산한 유기농산물을 쓴다. 심지어 전라도의 대표 요리인 삼합에 쓰는 돼지고기도 충남 홍성유기영농조합에서 유기축산으로 생산한 고기를 쓴다. 식자재값이 여느 식당의 배 가까이 든다. 특히 이 식당에서 쓰는 유기농 양념은 최소 서너 배에서, 많게는 10배 이상 비싸다.

그럼에도 밥값은 비싸지 않다. 비빔밥 단일 메뉴인 점심은 가난한 이웃들이 유기농산물로 만든 맛있고, 몸에 좋은 식사를 할 수 있도록 ‘값의 턱’을 낮췄다. 신혜영 대표는 “비빔밥 원가는 5천원이지만 밥값은 1000원 이상 형편껏 내면 된다”고 했다. 점심이면 이 ‘밥집’ 카운터에는 손님들이 직접 돈을 넣을 수 있도록 모금함 같은 통을 놓아둔다. 계산은 자율적으로 한다. 신 대표는 “평균 2천원 정도 낸다”고 했다.

‘밥집’의 의도대로 이곳에는 맛있는 비빔밥을 즐기는 식도락가는 물론 점심값조차 부담스러운 가난한 동네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주변 건물을 관리하는 사람들, 청소 아주머니, 우유 배달원, 택배 기사 등. 이틀째 이곳에서 점심을 먹는다는 정봉석(69)씨는 “유기농 재료를 써서 그런지 밥맛이 담백하고 좋다”며 “밥값도 너무 싸다”고 말했다.

원가 5천원짜리 비빔밥을 평균 2천원에 파니 ‘밥집’은 적자다. 손해는 저녁 장사로 메울 계획이다. 저녁 메뉴는 다채롭다. 삼합(3만5천원), 전골(3만원), 녹두전, 황태구이(각 1만5천원), 파전, 부추전, 도토리묵(1만원) 등에다 전통주를 판다. 주차장도 마련되어 있어 유기농 안주로 몸까지 챙기는 술자리를 찾는 이들이 생겨나고 있다.

‘문턱없는밥집’의 다른 특징은 정토회에서 시작해 100만명 이상이 참가한 빈그릇운동에의 동참이다. 식당에서 빈그릇운동을 하는 곳은 거의 없다. 11일 점심 때 이곳을 찾은 손님들 가운데 밥 한 톨 남긴 이가 없었다.

주방에서도 음식물쓰레기를 거의 남기지 않으려 애쓴다. 그런 뜻을 지키다보니 별미요리도 만들었다. ‘나머지 조림’과 ‘꼬다리 전’. ‘나머지 조림’은 육수를 내고 난 멸치나 다시마, 새우, 양파 등으로 만든 조림이고 ‘꼬다리 전’은 버섯, 호박, 고추 등 식재료를 다듬다 남은 꼬다리를 모아 갈아서 만든 부침개다. 그래도 남는 식재료는 ‘지렁이 화분’을 이용해 거름으로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문턱없는밥집’은 전북 변산에서 유기농업과 대안교육을 뼈대로 한 공동체 운동을 펴고 있는 윤구병 변산공동체 대표가 발의하고, 보리출판사에서 그동안 모아온 공익기금으로 마련한 건물의 일부 공간을 제공해 탄생했다. 윤 대표는 “가난한 유기농 농사꾼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사서 만든 유기농 식사를 가난한 이웃들과 나누는 곳”이라며 “도시 서민과 가난한 농민 사이의 연대를 위해 만든 식당”이라고 말했다.

‘밥집’의 목표는 나눔에 그치지 않는다. 식당이 정상화되어 흑자가 나면 그 돈으로 지역의 소외된 이웃을 돕는 사업을 시작하려고 한다. 신 대표는 “이주민 자녀나 저소득층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공부방이나 대안학교를 만들고 여성을 돕는 사업을 펼 계획”이라고 말했다. 문의 (02)324-4190.

권복기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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