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빈곤·전쟁도 비우자… 커가는 ‘빈그릇’ 운동
방송날짜: 2008.05.14
빈곤·전쟁도 비우자… 커가는 ‘빈그릇’ 운동 | |
[한겨레 창간 20돌] 스무살 이야기
[정토회] 서울 서초동 정토회관은 50여명의 정토회 회원들이 먹고 자는 공동체다. 그리고 매일 수백 명의 불자들이 드나든다. 그러나 이곳에선 거의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다. 그 정도 사람이 모인 곳이라면 매일 대형 쓰레기 봉투가 수십 개는 나올 법하지만 불가사의한 일이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공양 간에는 누구나 할 것 없이 발우공양식으로 자기그릇에 담은 음식을 모두 비운 뒤 백김치와 식수로 남은 찌꺼기를 씻어내고 헹궈 백김치를 먹고 그 물마저 마셔버린다. 화장실에서도 정토회원들이 봉사하러 자주 갔던 인도에서와 마찬가지로 화장지를 사용하지 않고 물로 뒷물을 한다. 이런 일이 정토회관에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정토회 산하 국내 12개 법당과 해외 8개 법당을 비롯해 50여개 법회 모임에 참여하면서 이 세상을 ‘깨끗하고 맑고 밝은 정토’로 바꾸겠다고 정토행자로서 서원한 2500여명이 법당과 가정에서 이를 동시에 실천하고 있다. 이들은 가정에서 불가피하게 나온 음식물찌꺼기도 화분에 지렁이를 키워 자연분해시켜 자체 해결하며, 세제를 사용하지 않고 쌀뜨물로 설거지를 한다. 또 나와 남과 세상을 동시에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삶을 서원하는 기도를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한 뒤 1천 원씩을 보시한다. 지금도 지구상에서 기아상태에 허덕이고 있는 12억의 기아자들과 병자, 문맹인들을 돕기 위해서다. ‘맑은 마음, 좋은 벗, 깨끗한 땅’을 만들기 위해 정토회는 산하에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국제구호단체 제이티에스(JTS), 대북지원활동으로 잘 알려진 국제난민·인권·평화지원센터 좋은벗들, 환경단체 에코붓다 등을 두고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정토회 추계로는 국내외 5만여명이 이런 네트워크를 통해 정토세상을 만드는 데 참여하고 있다. 에코붓다가 2004년부터 시작한 음식물 쓰레기 남기지 않기 운동인 ‘빈 그릇 운동’은 불과 2년만에 참여자가 150만을 넘어서는 등 큰 호응을 얻으면서 대표적인 환경운동으로 발돋움했다. 정토회의 활동은 다른 종교단체들이 포교나 선교 차원에서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정토회는 종교를 앞장세우지 않는다. 다만 ‘있는 그 자리’에서 남과 나와 세상을 동시에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가치관으로 바꾸며 이를 실천하는 삶이 되도록 이끈다. 이 점이 정토회가 기존 종교단체와는 전혀 다른 접근방식이다. 정토회는 20년 전인 1988년 1월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상가건물 2층에 작은 법당에서 법륜 스님을 주축으로 시작됐다. 이 단체의 모든 근간은 수행이다. 다만 전문 수행자들과 달리 이들은 일상 생활과 봉사활동 속에서 수행을 통해 자신과 세상을 동시에 변화시킨다는 점이 차이가 있다. 경북 문경 정토수련원에서 매달 진행되는 수련프로그램은 이런 삶의 필요성을 깨닫고, 구체적인 실천의 삶을 꾸려갈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이런 자기성찰을 통해 정토회원들은 북한동포돕기와 인도, 아프가니스탄, 필리핀 민다나오 등에서 놀라운 실천수행의 성과를 거두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들은 인도 카스트의 신분차별로 인해 수천 년 동안 소외되고 방치되었던 비하르주 불가촉천민촌 둥게스와리에 학교를 세우고 마을마다 유치원을 세워 어린시절부터 구걸밖에 모르던 아이들을 어엿한 시민으로 키워내 인도사회를 놀라게 했다. 또 지난 2002년 정토회 창설자인 법륜 스님이 필리핀 막사이상을 받은 뒤 필리핀 종교지도자들의 요청을 받은 법륜 스님과 제이티에스 회원들은 무슬림반군과 공산반군, 원주민들이 섞여 분쟁이 심한 민다나오 섬에 들어서 29개 마을에 64칸의 학교를 지으면서 민다나오에 평화의 씨앗을 심고 있다. 정토회 초기 멤버들은 20년이 흐른 지금도 정토회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시민·환경운동계에서 이름이 알려진 유정길 , 정안숙, 박석동, 백혜은씨 뿐 아니라 해외 구호에 나섰던 박진아, 이덕아, 이지현씨와 수련을 이끈 박수일, 남연우, 김재영, 법당을 맡은 신원선, 최선희, 김정숙, 장도연, 고춘복, 이미경, 이정님, 구미경씨 등도 20년을 한결 같이 정토세상 운동을 앞서 실천해온 사람들이다. 이들은 월급도 없는 정토회를 떠나지 않으며 20년 전 서원한 삶을 지금도 웃으면서 계속해 가고 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email protected] 사진 곽윤섭 기자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