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외출

– 김월금( 환경 사업부 교육팀) –

얼마 전 농부가 가을걷이 하는 것 같은 마음으로 화단에 심어 논 고추나무 몇 그루에서 고춧잎을 훑었다. 추워지기 전에 고추도 다 따고, 고춧잎을 훑어서 맛있게 먹었다.

너무 싱싱한 고추나무를 뽑기 싫었지만 내년을 기약하면서 가을걷이를 했다. 지렁이 분변토가 뒷심을 있게 했는지 초겨울에 접어들었는데도 고추나무가 아주 좋았다. 여름내 맛있는 풋고추가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적당하게 매운 것이 된장에 찍어먹는 것이 참 맛있었다. 하얀 박꽃을 피우던 박은 지금 전깃줄에 대롱대롱 말라서 매달려 있다. 어느 날 경비 아저씨가 별생각 없이 청소한답시고 밑둥을 잘라버렸다.

그렇게 밑둥을 잘라서 죽어가는 모습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보든 지난여름 그때가 생각난다. 처음에는 박꽃송이가 줄어들지 않고 이틀 정도 가다가 차츰 박꽃송이가 줄어들지 않고 이틀정도 가다가 차츰 박꽃송이가 줄어들면서 맨 마지막에는 세 송이 정도가 아주 작게 피더니 시들어버렸다. 밑둥이 잘려 영양 공급을 받을 수 없어도 줄기에 있는 모든 영양분으로 열흘 이상을 버티면서 최선을 다하고 한생을 마감한다. 많은 것을 느꼈다. 나도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는지…

베란다에 비닐을 쳐서 바람을 막고 지렁이 화분도 깨끗이 닦고 정리하고 나니 가을걷이를 끝낸 여유가 생겼다. 모처럼 나들이 겸 청주에 있는 친구 병문안을 가기로 약속하고 고속 버스터미널에서 친구 둘과 나 셋이 만났다. 버스에 오르고 자리에 앉고 나니, 한 친구가 “커피 가져왔다. 한잔할래?”하면서 보온병을 꺼낸다. 동시에 일회용 종이컵도 두 개씩 끼운것을 내민다. 순간! “아니야. 내 컵은 여기 있어.”하면서 얼른 가방에서 내 컵을 내어 놓았다. 다른 한 친구가 말한다. “얘는 일회용 안 쓰려고 자기 컵을 들고 다니는데, 너는 종이컵을 두 개씩이나 끼어서 주니?”핀잔 비슷하게 말한다. 그렇게 말하는 한 친구는 나를 자주 만나고, 오랫동안 내가 하는 활동을 지켜본 친구다. 따라하기는 어려워하지만 나를 이해하려는 마음을 가졌다. 한참 후에 청주에 도착했다.

점심을 먹고 가자고 해서 음식을 시키는데 떡볶이와 김밥을 시켰는데 김밥에 들어있는 소세지를 일일이 골라내고 일회용 용기에 김밥을 담아오고, 국물을 남기는 모습을 봐도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별로 없었다. 식사가 끝나고 화장실을 가는데 나한테 휴지를 준다. 손 씻고 기계에 손 말리고, 휴지에 손 닦고.. 세상 흐름일까? 휴지를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조금만 무엇이 묻어도 금방 휴지 없으면 불편해한다. 손수건 한 장, 뒷물수건 한 장이면 휴지 쓸 일이 없다.

마트에 가서 귤을 좀 사가서 먹자고 했는데 나는 포장되지 않고 쏟아놓은 귤을 먹을 만큼만 사서 투명망에 담으려고 하고, 친구들은 포장이 잘된 비닐에 들어 있는 귤을 사야 맛도 있고, 보기도 좋다고 포장된 귤을 사자고 우긴다. 2:1 결국 내가 양보를 했다. 모처럼 만난 친구들과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없어 조심스럽다. 지켜보고 있자니 나의 한계를 느낀다. 크게 힘든 일이 아닐진데. 가방에 컵 하나, 투명망 하나 챙겨 넣고, 손수건 한 장이면 물, 공기, 나무, 에너지, 모두가 살 수 있는데 돌아오는 길에 하루의 여행이 주는 여러 가지 의미를 새기면 상쾌하지는 못했다. 같이 상생할 수 있는 삶이 되었으면 하는 꿈을 키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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